[손영옥의 지금, 미술] 탈핵, 붓으로 발언하다

‘탈핵 운동가’를 자처한 방정아 작가가 고리원자력발전소를 답사한 경험을 토대로 그린 작품 ‘핵헥’(2016년, 캔버스에 아크릴, 72x116㎝). 인간 형상의 몸체에 강렬한 보색의 선이 구불구불 흐르고 있어 마치 인간이 좀비로 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방정아 작가
 
‘급한 목욕’(1994년, 캔버스에 아크릴, 97x145㎝)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 중년 남녀 몇몇이 모였다. 흔히 있는 일상의 풍경인데, 이 그림에선 뭔가 수상쩍고 불안하다. 사람의 형상을 따라 흐물흐물 흐르는 선은 인간의 몸을 액화시키는 듯하다. 윤곽도 점점 뭉개져 사람들이 영화 ‘부산역’에서 본 좀비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보색이 강한 대비를 이루는 선이라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에도 불안한 기운이 가득하다. 멀리 보이는 회색의 돔 건물이 화면 전체에 흐르는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암시한다. 그곳은 고리원자력발전소이다.

방정아(51) 작가가 ‘탈핵’을 주제로 우리 앞에 돌아왔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지난 9일 막을 내린 개인전 ‘믿을 수 없이 무겁고 엄청나게 미세한’에서 선보인 최근작의 하나가 바로 원전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다. 고리원자력발전소를 답사한 경험을 녹인 ‘핵헥’(2016년 작)이 대표적이다. ‘핵’과 의성어 ‘헥헥’을 조합시킨 작품 제목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또렷하게 전한다.

이것은 발언으로서의 미술 행위를 넘어 실천가이기를 자처한 방정아를 증거하는 작품이다. 최근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말했다.

“르포르타주 미술가로 불려도, 탈핵 운동가로 불려도 괜찮습니다. 의외로 동시대에 진행되는 원전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작가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방정아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민중미술 작가라고 정의 내릴 수 있겠다. 1987년 홍익대 미대에 입학한 그는 대학에 들어간 그해 이한열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6·10민주화항쟁을 겪었고, 스스로를 운동권이었다고 했다.

89년 동구권이 무너지고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밀려들며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전형성에 갇힌 민중미술이 답답했다. 고향인 부산행을 택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화두인 지역과 여성, 환경의 세 가지 키워드를 붙잡은 것이다. 지역미술운동을 하고자 했고, 주제로는 ‘아줌마’와 ‘일상’을 택했다. 그녀의 화폭 속에 안온한 일상은 없었다. 매 맞는 여성, 가출한 주부, 화장실에 쓰러진 마약 투약자, 변심한 동거녀에게 앙심 품은 남자….

평론가 이나라씨는 방정아의 작품 소재와 관련해 ‘오늘의 사건 사고’라는 표현을 썼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 사건과 사고에서 방정아의 상상력은 뻗어나간다. 대표작인 ‘급한 목욕’(1994)이 그런 예다. 자신을 구타한 남편을 살해한 여성의 이웃을 인터뷰하는데, ‘목욕탕에 가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요’라고 한 말이 쏙 들어오지 뭔가. 그 작품은 멍 자국을 감추기 위해 대중목욕탕이 문 닫을 시간에 들러 서둘러 몸을 닦고 나오는 여인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환경문제도 이때 관심을 가진 주제였다. ‘복귀’(2001)는 폐허가 된 거북섬의 회 센터가 수년 뒤 바닷물이 차오르며 자정 능력을 갖는 것을 보고 느낀 놀라움을 표현했다. 96년 결혼한 뒤로는 오히려 ‘아줌마’ 주제에서 멀어지며 일상으로 주제가 확대됐다. 재래시장의 사교댄스, 가수가 꿈이었는데 노래방을 하는 주부 등이 캔버스 속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방정아의 그림 세계에서 소재만큼 주목해야 할 것이 기법이다. 그는 회화의 두 축인 선과 색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했다. 초기의 리얼리즘의 사실적인 화면은 90년대 후반 들어 거친 선과 왜곡된 형상을 특징으로 하는 표현주의적 화면으로 변했다가 2010년대 초반에는 마티스를 연상시키듯 색면의 화면이 구사되기도 했다. 2009년 남편을 따라 미국에 체류하며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을 목격한 이후에는 상징적이면서도 관념적인 화면으로 흐르기도 했다. 공통점은 그 어떤 그림도 편안한 그림, 거실에 걸어두고 싶은 그림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처럼 진폭이 큰 변화는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의 불안과 그걸 딛고 전진하고자 했던 삶의 증거이기도 하다. 2007년 미술시장 버블 때는 미술판에 회의를 느껴 영화판으로 가볼까 기웃거리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비운의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더라고요. 지방으로 내려갔지, 미술시장에는 적응 못했지…”

그런 그에게 1세대 민중미술 작가인 홍성담이 전환점이 돼 주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던 그가 제안해 방정아 정정엽 등 예술가 몇몇이 2016년 봄 원전 답사 모임 ‘핵몽(핵과 악몽의 합성어)’을 꾸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해 가을 경주 지진이 일어나 모임은 탄력이 붙었다. 영광 월성 울진 고리 등 전국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지역들을 찾았다. 모임은 자연스레 전시로 이어져 2016년 겨울, 2018년 봄 두 차례 부산에서 단체전도 했다. 올해는 서울로 진출해 11월에 세 번째 전시회를 갖는다.

작가는 ‘탈핵 고전’으로 불리는 다카기 진자부로의 ‘원자력신화로부터의 해방’을 읽어볼 것을 기자에게 권했다. 그에게 ‘미술행동가’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부산=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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