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꿈의 방사선치료, 양성자 vs 중입자
② 면역치료, 암과의 새로운 전쟁
③ 희소·난치암 환자에게도 희망을
④ 암, 운명을 갈라놓은 유전자
⑤ 로봇, AI가 바꿔놓는 암 치료
⑥ 암 생존자 200만명 시대
자가골 이식 땐 뼈강도 약해지고 동종골 이식은 잘 붙지 않을 수도
티타늄뼈, 강도 우수·생체 친화적
재발·전이암 치료엔 ‘하이펙’ 탁월
복·흉강내 항암제 직접 통과시켜 남아있는 미세 전이암까지 제거
희귀암(혹은 희소암)의 국내 기준은 따로 없다. 유럽 기준을 준용해 1년에 10만명 당 6명 이하에게서 발생하는 암으로 분류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인구(5000만명)로 환산해 보면 발생자가 연간 약 2500명 이하인 암이 해당된다. 국립암센터가 지난해 처음 국내 희귀암 발생 현황을 조사한 결과 매년 256종, 4만4000여명이 신규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암 환자의 약 27%가 희귀암에 해당됐다. 환자 수가 적다 보니 흔히 발생하는 ‘호발암’에 비해 여러 면에서 소외돼 있는 게 현실이다. 정확한 발생 데이터 파악이 어려워 진단 및 치료법 개발이 더디다.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은 이른바 ‘돈이 되는’ 호발암에 치우쳐 있고 정부의 정책지원도 환자 수 많은 암들에 우선 순위가 놓인다. 환자들은 희귀암 정보를 접하기 쉽지 않고 전문가를 찾기도 힘들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립암센터와 일부 민간 대형병원들이 국내 희귀·난치암 치료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그간 치료가 매우 어려웠던 뼈암(골종양)이나 전이·재발암에 새로운 치료법들을 활발히 시도하고 있어 환자와 가족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뼈암 치료에 한줄기 빛
골육종과 연골육종 치료에 3D프린팅을 활용한 뼈재건 수술이 대표적이다. 육종(Sarcoma)은 위 대장 폐 간 등 내장기관에 발생하는 일반 암(cancer)과 달리 뼈 연골 근육 지방 인대 혈관 신경 등 몸 속 결합조직(근골격계)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뼈와 연골에 발생하는 골육종과 근육 지방 등에 생기는 ‘연부조직육종’으로 나뉜다.
17일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6년에 골육종 및 연골육종은 533명, 연부조직육종은 1088명이 새로 발생했다.
2년 전 골반뼈 연골육종 판정을 받은 A씨(49)는 3D프린팅의 도움을 받아 암 수술을 했다. 수술 전 미리 3D영상으로 골반뼈 부위 암 절제 범위를 정하고 3D프린터로 찍어낸 티타늄(금속) 인공뼈를 암 제거 부위에 끼워넣었다. A씨는 “골반뼈에 생긴 연골육종은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효과가 거의 없어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라고 들었다”면서 “암 제거 후 하지에 장애가 남을까봐 걱정했는데, 튼튼한 인공뼈 이식으로 재건이 잘 됐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고 했다.
6년 전 역시 골반뼈 연골육종을 진단받은 뒤 거듭된 치료 실패에 좌절했던 B씨(46·여)도 3D프린팅을 이용한 골반뼈 재건 수술을 해 보자는 담당의사의 권유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B씨는 당초 암이 생긴 뼈 부위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골(骨)시멘트’를 채워넣는 수술을 받았지만 얼마되지 않아 재발했다. 다시 암을 절제하고 이번엔 그 곳에 다른 사람(시신 기증자)의 골반 뼈를 채취해 이식했다. 그러나 이식한 뼈가 자신의 정상 뼈와 제대로 붙지않는 부작용이 생겨 고통받아왔다.
골육종은 팔 다리 골반 등 인체 어느 부위 뼈에도 생길 수 있으며 무릎 주변이 가장 많다. 연골육종은 골반뼈에 잘 걸리고 넓적다리뼈, 윗팔뼈, 늑골 등에도 생긴다.
국립암센터 강현귀(정형외과 전문의) 희귀암센터장은 “골종양세포는 혈관을 타고 폐나 다른 장기로 전이를 잘 일으키는데, 그 전에 조기 발견하고 치료하는 게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명했다.
골종양의 경우 암이 다른 장기로 퍼지지 않았다면 수술을 우선하고 전이됐을 경우 항암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수술의 80~90%는 암이 생긴 곳을 광범위하게 잘라내고 그 자리에 ‘종양 대치물’을 채워넣어 골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지금까지는 대치물을 만드는 방식이 크게 2가지였다. 암 있는 뼈를 떼내 65도의 미지근한 생리식염수에 30분간 담궈 암세포를 죽인 뒤 다시 이식(자가골 이식)하거나 타인의 뼈를 채취해 멸균처리한 뒤 붙이는 방법(동종골 이식)이다.
하지만 자가골 이식의 경우 뼈의 강도가 약한 단점이 있고 동종골 이식은 환자와 비슷한 크기의 기증자 뼈를 찾기가 힘든데다 의사가 직접 손으로 재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크다. 암 제거 부위에 딱 맞지 않으면 잘 붙지 않을 수 있다.
동종골 이식을 인공관절이나 골시멘트, 금속판과 병합해 뼈를 재건하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른 사람 뼈를 사용하는 데 따른 감염과 파손 위험이 높다.
이런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게 3D프린팅으로 만든 티타늄 합금 대치물이다. 환자의 컴퓨터단층촬영(CT)영상을 바탕으로 3D영상으로 뼈 모델을 디자인한 뒤 3D프린팅으로 티타늄 가루를 이용해 맞춤형 인공뼈를 찍어내 이식하는 것이다.
강 센터장은 “환자의 골 결손 부위에 맞게 짧은 시간 안에 제작 가능하고 출혈, 감염 등 합병증이 줄어든다. 주위 정상 조직과 결합 강도도 우수하고 생체 친화적 소재여서 골 성장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골반뼈 연골육종에는 3D프린팅이 가장 적합한 치료법”이라고 했다. 티타늄 합금은 2016년 3D프린팅 인체 삽입 재료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았다.
이밖에 소아 등에 드물게 발생하는 희귀암인 뇌척색종, 눈암(망막모세포종 등)은 암세포만 골라 파괴하는 ‘양성자 치료’가 거의 유일한 희망으로 자라잡아가고 있다.
뱃속에 항암제 직접 통과, 잔류 암 제거
재발 및 전이된 난치암에 수술과 온열 항암제 치료를 병행하는 ‘하이펙(HIPEC)’ 시술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이펙은 복강(뱃속)이나 흉강(가슴 속) 내에 퍼져 있는 암들을 제거하는 ‘종양감축수술’과 함께 수술 중에 42~43도로 가열한 항암제(암세포가 열에 약하는 점 이용)를 복강, 흉강에 직접 통과시켜 남아있을 수 있는 미세 전이암까지 없애는 것이다. 난소암과 자궁암, 대장암, 맹장암 등의 복막 전이 환자, 폐암의 흉막 전이, 위점액종, 흉막암, 복막중피종 등 기존 방법으로 치료가 매우 어려운 환자들이 대상이다.
C씨(42·여)는 갑작스러운 복부 팽만감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날벼락 같은 난소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암이 난소 주변 복막과 횡경막(복부와 흉부 사이 근육막), 대망(장을 싸고 있는 기름막) 등으로 전이돼 있었다. 다시 말해 배 안 곳곳에 암이 다 퍼져 있었던 셈이다.
의료진은 자궁과 난소·난관, 림프절, 횡경막, 대망, 맹장 등 암이 퍼져있을 부위는 다 절제했다. 곧이어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을 없애기 위해 복강 안에 데워진 항암제를 몇차례 직접 통과시킨 뒤 봉합했다.
국립암센터 임명철 자궁난소암센터 전문의는 “항암제를 주사로 투여하는 기존 항암치료와 달리, 암세포 사멸 효과가 큰 데워진 항암제를 수술 중에 뱃속에 직접 투여함으로써 복강안 장기나 조직 사이에 남아있는 암까지 제거하는 것”이라며 “눈에 보이는 전이된 암 병변을 제거하는 종양감축수술이 잘 될수록,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하이펙센터를 개소한 분당차병원 외과 김우람 교수는 “하이펙으로 치료한 환자군과 항암치료 단독 시행 환자군을 비교했을 때 무병 생존율이 각각 22.2개월과 12.6개월로 차이났다”면서 “하이펙 시술은 9~10시간 정도 걸린다. 하루 온종일 환자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만큼 경험많은 의사와 치료팀의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희귀암 DB 구축 치료 지침 만들어야”
서울아산병원 안진희 교수
“국내 희귀암 전문 치료 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합니다.”
민간 의료기관으론 처음 지난해 6월 ‘육종·희귀암센터’를 연 서울아산병원의 안진희(종양내과 교수) 센터장은 17일 “10여년간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희귀암에 대한 다국가 차원의 협력 연구를 활발히 진행해 왔고 과거에 비해 많은 연구성과가 발표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희귀암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표준 치료 지침을 정립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희귀암은 개별 암종별로는 유병률이 낮지만 희귀암 전체를 놓고 보면 암 환자 5명 가운데 1명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고 했다. 또 “최근엔 희귀암 뿐 아니라 유방암 폐암 등 흔한 암종에서도 매우 드문 아형(아류)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희귀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단이 쉽지 않고 표준 치료법이 정립되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희귀암은 흔히 볼 수 있는 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료 성적이 열등하다. 국립암센터 조사에 따르면 희귀암의 상대 생존율은 1년 74.2%, 3년 59.6%, 5년 54.9%로 일반 암(각각 77.9%, 67.0%, 63.1%)보다 낮았다. 안 센터장은 “생존율 향상을 위해서라도 희귀암에 대한 확실한 치료 지침, 충분한 연구기반의 치료 가이드라인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