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7월부터 사실상의 경제 제재를 발동한다. 보복조치가 현실화되면서 한·일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우려도 제기된다.
산케이신문은 30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운용 정책을 수정해 TV·스마트폰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부품으로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꼭 필요한 리지스트와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까지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7월 4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7월 1일 공식 발표될 이번 조치는 징용 배상 소송을 둘러싼 사실상의 보복조치라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또 안전보장상 우호국으로 인정해 첨단재료 등의 수출 허가 신청이 면제되는 ‘화이트(백색) 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했다. 한국이 백색 국가 대상에서 제외되면 일본 업체들이 해당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 건별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신청과 심사에는 90일 정도 걸린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리지스트는 세계 전체 생산량의 90%, 에칭가스는 약 70%를 일본이 점유하고 있어서 반도체 기업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한다. 이번 규제가 강화되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이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상으로 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리자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을 근거로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국 정부에 시정을 요구해 왔다. 최근엔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출연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주자는 한국 정부의 제안도 거부했다.
한국 외교부는 “일본 정부로부터 관련 조치에 대해 통보받은 바 없다”면서 “일본 언론 보도의 진위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 28일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한·일 외교장관 회동 등에서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G20에서 의례적인 악수만 했을 뿐 전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일본이 보복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은 진작부터 나온 바 있다. 다만 보복조치 착수 시점에 대해선 강제징용 피해자 측이 법원에 제출한 ‘매각명령 신청’이 진행돼 일본 기업에 실질적 피해가 발생하는 8월쯤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는데 다소 이르게 조치를 한 것이다.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보복에 나선 배경에 대해 7월 21일 참의원 선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보복조치가 현실화할 때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한편 대응 조치도 검토 중이다.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에서 “일본의 보복성 조치가 나온다면 (정부도) 거기에 대해 가만있을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산케이신문이 보도한 일본의 보복조치는 한국 정부가 예상한 시나리오 범주 내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일본의 보복조치가 현실화하면 경제에 악영향은 있겠지만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수출을 금지하는 것이 아닌데다 대체 수입처를 통해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복에 보복이 뒤따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경우 자칫 단교 수준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