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노딜’ 이후 122일 만인 30일 북한과 미국 양 정상이 다시 손을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44분 판문점 남측에 있는 자유의 집 문을 열고 나와 T2(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T3(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 사이에 있는 군사분계선(MDL) 표시 턱으로 걸어갔다. 지난해 4·27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했던 곳이었다.
곧이어 북측에서 인민복 차림의 김 위원장이 내려와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다. 북·미 정상은 오후 3시45분쯤 MDL을 사이에 두고 악수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내 친구(my friend)”라고 말했고, 김 위원장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친근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어 “제가 북쪽으로 넘어가길 바랍니까”라고 물었고, 김 위원장은 “이런 데서 각하를 만나게 될 줄 생각 못했습니다. 한 발자국 건너오시면 사상 처음으로 우리 땅을 밟으시는 미국 대통령이 될 겁니다”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면 영광”이라며 경계석을 넘어 북쪽으로 건너갔다.
두 정상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께서 분리선(MDL)을 넘은 것은, 다시 말하면 좋지 않은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좋은 관계를 개척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남다른 용단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통보를 하지 않았는데 즉각 응답해주신 데 대단히 감사드린다”며 “우리는 지금까지 엄청난 많은 진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처음 회담 때부터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오후 3시51분쯤 자유의 집 앞으로 나오면서 남·북·미 세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연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처음 당선됐을 때 한반도에 아주 큰 분쟁이 있었다”며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김 위원장, 문 대통령과 함께 노력한 결과 이제 많은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판문점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과 김 위원장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양 정상을 각각 수행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김 위원장 ‘집사’로 불리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과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겸 노동당 부부장은 김 위원장 동선을 챙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북한과 미국 요원들이 나란히 서서 양 정상을 각각 경호하는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은 자유의 집에서 회담을 한 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오후 4시53분쯤 북측으로 돌아갔다. 이에 앞서 한·미 정상은 MDL로부터 25m 떨어진 판문점 인근 오울렛 초소를 함께 방문했다. 또 판문점 인근 국군과 미군 장병이 근무하는 기지인 ‘캠프 보니파스’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연합사 구호인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 문구가 새겨진 골프복과 흰색 모자를 선물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오늘은 북·미 간의 대화에 집중하도록 하고, 남북 간의 대화는 다음에 다시 도모하게 될 것”이라며 북·미 대화의 조연 역할을 자처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