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비뇨기 로봇수술 최적
매년 9000건 로봇이 수술
손떨림 잡아주고 정교해져
3차원 입체영상 보며 수술
통증·출혈·합병증 줄여
의료 AI, 서양 논문·환자 기반
“한국형 AI 개발” 목소리 커져
4차산업혁명의 아이콘인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암 치료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로봇 암 수술이 전통적인 개복 및 복강경 수술과 함께 새로운 옵션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의사가 조정하는 로봇팔로 정교하게 암을 떼냄으로써 통증·출혈을 줄이고 그에 따른 환자의 합병증 위험 감소, 입원 기간 단축, 빠른 회복 및 일상 복귀를 돕는다. AI는 항암제 등 최적의 치료법 선택과 암 진단 영역에서 의사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글 싣는 순서
① 꿈의 방사선치료, 양성자 vs 중입자
② 면역치료, 암과의 새로운 전쟁
③ 희소·난치암 환자에게도 희망을
④ 암, 운명을 갈라놓은 유전자
⑤ 로봇, AI가 바꿔놓는 암 치료
⑥ 암 생존자 200만명 시대
로봇 암 수술, 확산세
로봇 수술이라 하면 의사가 아닌 로봇이 자동화돼 수술을 한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1999년부터 전 세계에 보급된 로봇 수술 장비인 ‘다빈치’ 시리즈는 로봇으로 불리지만 자체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수술은 전적으로 의사의 주도 하에 이뤄진다.
다빈치 개발사인 인튜이티브서지컬코리아 관계자는 1일 “의사는 콘솔이라는 전용 공간에서 다빈치 로봇 수술기를 조정하는데, 자신의 손 움직임을 로봇팔에 장착된 초소형 수술 기구로 전달해 수술한다”면서 “의사의 손 떨림은 잡아주면서 정교한 움직임은 그대로 기구로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로봇 수술의 장점은 1만8000건 이상의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와 보고서를 통해 확인했다.
문혜성 이대서울병원 로봇수술센터장은 “로봇수술은 개복 및 일반 복강경 수술에 비해 10~15배 확대된 시야로 3차원(3D) 입체 영상을 보면서 수술이 가능하며 특히 로봇팔의 손목은 540도(한바퀴 반)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때문에 기존 복강경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수술을 하는 데 매우 편리하다”고 말했다. 복강경의 경우 손목 관절 기능이 없는 긴 수술 기구를 움직여야 해 의사에게 고도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개복 수술은 절개로 인한 흉터가 흠이다.
2005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전립선암 치료에 국내 첫 로봇 수술이 도입된 뒤 전국 59개 병원에 85대의 수술용 로봇이 보급돼 있다.
매년 1만건의 로봇 수술이 이뤄지고 있으며 90% 이상이 암 수술에 활용되고 있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김정준 교수는 “연간 9000건 이상의 로봇 암 수술이 시행되며 매년 5~10%씩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립선암 수술(전립선절제술)의 70% 가량이 로봇 수술로 이뤄진다. 개복 수술(21%)과 복강경 수술(9%)에 비해 압도적이다. 신장암의 47%가 로봇수술로 시행된다. 방광암, 신우암, 요관암, 갑상선암, 대장암(직장암), 위암, 췌장암 등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김정준 교수는 “특히 전립선 및 방광은 골반 내에 위치하고 신장은 심장에서 나오는 혈관이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에 수술이 매우 까다롭다”면서 “암 제거와 비뇨기 기능 보존을 위해서는 매우 세심한 수술이 필요한데, 정밀한 수술이 가능한 로봇 수술이 비뇨기 암에 가장 최적화된 수술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로봇 수술 수준은 세계 최고로 꼽힌다. 한국외과로봇수술연구회 이길연(경희의료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회장은 “국내 의료진이 개발한 위암 대장암 직장암 전립선암 갑상선암 등의 로봇 수술법은 국제 표준으로 정립돼 있다”고 했다.
고난도 로봇 수술도 적극 시도하고 있다. 김정준 교수는 최근 일반 신장암의 5배에 달하는 초대형 신장 종양을 로봇 수술로 완전 제거하는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로봇 수술로 없앨 수 있는 신장암의 최대 크기는 직경 12㎝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클 경우 불가피하게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 김 교수는 신장암 직경이 15㎝로 매우 크고 췌장과 비장 대장에까지 암이 번진 60대 환자를 대상으로 로봇 수술로 암 조직만 선택적으로 잘라냈다.
다빈치 시리즈의 가장 최신 버전인 ‘다빈치SP’가 지난해 국내 의료기관 3곳(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이대서울병원)에 도입돼 암 수술에 쓰이고 있다. 하나의 로봇팔에 3D 고해상도 카메라와 손목관절을 갖춘 3개의 수술 기구가 탑재돼 보다 좁고 깊은 몸 속 공간에서의 수술에 적합하다. 이대서울병원 암센터는 다빈치SP를 이용한 로봇 수술 120례를 달성해 가장 앞서가고 있다.
로봇 수술 확산의 걸림돌 중 하나는 평균 1000만원 가량 드는 비싼 비용이다. 전립선암의 경우 1200만~1300만원. 갑상선암은 700만~800만원이 소요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길연 회장은 “일본은 위암과 직장암 로봇 수술에 건강보험 혜택을 주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로봇 수술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비뇨기암센터 정재영 전문의는 “최근엔 30~40대 여성들에 자주 발생하는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같은 부인암의 로봇 수술이 증가 추세지만 보험이 안돼 환자들 부담이 크다. 일부를 실손보험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고 있으니 로봇 수술도 올해나 내년에 급여권으로 들어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하반기에 로봇 수술 급여화 추진을 위한 논의에 착수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로봇 수술의 건보 적용을 두고 찬반 의견이 있다”면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의 논의를 통해 로봇 수술의 급여화 여부와 범위 등에 대한 기준을 세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건보 재정 등 여러 사안을 감안해 비용 효과성 등 측면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전립선암, 신장암 등 1~2개 로봇 수술에 먼저 적용하고 점차 확대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AI는 ‘보조 의사’
AI는 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치료법을 제시하는 ‘보조 의사’로 활용되고 있다. 암 치료 현장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는 대표 의료 AI는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다. 2016년 말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처음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8개 지방 의료기관에 보급됐다.
왓슨 포 온콜로지는 IBM이 개발한 클라우드 기반의 AI 플랫폼이다. 암 환자 데이터를 입력하면 과거 임상 사례를 비롯해 해외 의료기관의 자체 제작 문헌과 290종의 의학저널, 200종의 교과서, 1200만쪽에 달하는 전문자료를 검색해 그 환자에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강력추천, 추천, 비추천’ 등 3가지 형태로 7초 만에 의료진에게 제시한다.
가천대 길병원의 경우 올해 5월 기준으로 왓슨 진료 환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대장암이 32.4%(339명)로 가장 많았고 유방암(29.2%) 폐암(13.1%) 위암(12%) 부인암(10.4%) 비뇨기암(2.1%) 갑상선암(0.7%) 기타(0.1%) 순이었다.
길병원은 최근 암 유전체 분석 AI플랫폼인 ‘왓슨 포 지노믹스(Watson for genomics)’를 추가로 도입했다. 이는 암 환자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그에 맞는 약물 정보를 매칭해 빠르게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안성민 가천대 길병원 유전체의과학연구소장은 “왓슨 포 온콜로지 도입후 2년간 의료 AI의 효용성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다”며 “이번에는 왓슨 포 지노믹스를 활용해 임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성과를 도출하는 한편, 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치료법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왓슨 포 지노믹스는 가천대 길병원을 포함해 4곳의 의료기관이 들여왔다.
일각에선 왓슨이 서양 환자와 해외 논문 등을 근간으로 치료법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위암처럼 한국에 특화된 암 치료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왓슨 첫 소개 직후 한때 붐을 이뤘던 국내 의료기관의 왓슨 도입 움직임이 조금 주춤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신 ‘한국형 AI 의사’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정부 지원으로 서울아산병원 중심으로 추진된 ‘닥터 앤서’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서울대병원은 소프트웨어회사 루닛과 함께 국내 환자의 흉부X선 9만8000건을 딥러닝해 폐암 등 4대 흉부질환을 한번에 찾아내는 AI 보조진단 시스템을 개발했다. 의료진이 AI시스템 보조를 받을 경우 최대 9%포인트까지 폐암 판독 능력이 더 향상되는 걸로 나타났다.
서준범 대한의료AI학회장(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은 “우리나라 의료 AI 기술과 인력은 일정 수준에 도달했지만, 현장에 적용하는 국가와 사회적 시스템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한국형 AI 의사인 ‘닥터 앤서’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듦에 따라 이를 도입·활용하기 위해 AI 혁신기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