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땅을 스무 걸음 밟았다. 이제 관심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 땅을 밟는 것이 현실화될지에 쏠리고 있다. 이것은 4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맞물려 있는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백악관으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김 위원장은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백악관 초청 의사를 전달한 것은 두 번째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백악관 초청 의사를 전했으며 김 위원장도 이를 수락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하면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을 뛰어넘는 ‘세기의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의 방미는 ‘백악관 햄버거 회동’으로 비유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땅을 최초로 밟은 미국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김 위원장도 미국 땅을 밟은 최초의 북한 지도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게 미국 방문은 양날의 칼이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30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미국 땅을 밟는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체제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이는 김 위원장이 가장 원하는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다. 북한이 독재와 인권 탄압 등 부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을 무턱대고 갔다가 빈손으로 귀국할 경우 김 위원장이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백악관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다면 북한 내에서 최고 존엄으로 평가받는 김 위원장의 지도력이 위기에 처하고,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고개를 들 가능성이 있다”면서 “김 위원장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섣불리 미국행을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김 위원장의 미국 답방은 북·미 비핵화 협상 성과에 달려 있다. 비핵화 협상에서 북·미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경우 최종 피날레인 협정식이 워싱턴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가능하지만 협상의 중간 단계에서 김 위원장이 ‘워싱턴행’을 결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북·미 두 정상의 파격적 행보를 감안하면 김 위원장의 방미가 올해 안에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P통신 등은 김 위원장이 판문점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양 방문을 초청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발언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판문점 회담으로 북·미 정상이 수시로 만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것은 큰 성과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30일 판문점 회동 후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은 도박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도박이) 먹혀들었다”고 응수하며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도 “오늘 역사에 남을 일을 한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 DMZ 방문을 동행하게 돼 영광이었다”며 “싱가포르에서 양국이 한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내 북한 카운터파트와 일해나가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합의사항 이행 작업이 이날로써 재개됐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