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는 경색된 한·일 관계가 불러온 암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약한 고리’를 직접 겨냥했다. 올 상반기 한국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이른다. 대체재 마련이 힘든 반도체 핵심소재를 꼽아 주력 산업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번 조치로 지난달까지 7개월째 내리막을 기록하고 있는 수출의 앞길은 더 어두워졌다. 지난달에만 전년 동기 대비 25.5%나 급락한 반도체 수출은 하반기에도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다.
재계는 한·일 관계 경색의 신호탄으로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꼽는다. 판결 이후 기업 활동이 눈에 띄게 둔화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의 해외직접투자는 167.9% 늘었지만, 한국에 대한 투자는 6.6% 감소했다. 지난해 11월부터 5월까지 양국 간 교역 규모는 전체적으로 9.3% 줄었다. 소재 등 중간재 교역 역시 8.3% 감소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반도체·디스플레이용 핵심 소재의 수입 제한으로 정점을 찍었다. 사전 협의조차 없었다는 점이 한·일 관계가 심각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통상라인 간 대화 연결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문제는 겨냥점이 한국 경제의 중추인 반도체라는 것이다. 1일 산업부에 따르면 상반기 수출액(2715억5000만 달러) 중 반도체 수출액(474억7100만 달러)은 17.4%나 된다. 지난해 12월 이후 수출이 내리막을 걸은 이유도 반도체 수출이 7개월간 감소한 탓이 크다. 지난달에는 자동차(8.1%)나 선박(46.4%)과 같은 주력 수출품목이 선전하면서 긍정적 신호가 나오기는 했다. 다만 반도체 의존도가 워낙 크다 보니 지난달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3.5% 줄어든 성적표를 받았다.
향후 수출 전망도 어둡다. 박태성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더 영향을 분석해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수출 2년 연속 6000억 달러 달성이라는 목표는 연초 전망보다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상근 전경련 전무는 “양국 정부가 선린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조속히 갈등 봉합에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일부에선 일본의 이번 조치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과잉공급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김준엽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