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전격 회동하면서 이달부터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북·미 ‘비핵화 협상 3라운드’가 펼쳐진다. 지난 2월 이후 소강국면이던 북·미 협상이 재개되면서 굳게 닫혔던 남북 대화의 문도 다시 열릴 것이란 기대가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판문점 합의’에 따라 이달 중순 양측 간 실무협상이 시작될 예정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30일 판문점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7월 중순 정도엔 실무협상이 전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의 카운터파트로는 북한 외무성을 상대하게 될 것”이라며 “누가 될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두어 명 가운데 한 명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대미 협상 창구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이끌던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교체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강경파인 김 부위원장에 대한 피로감을 피력하며 협상 창구 교체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도 유화적 태도를 갖고 있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실무협상에 나서게 된다.
북·미 대화 재개가 본격화되면서 정부는 북한이 그동안 외면했던 남북 대화에도 열의를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1일 “정부는 그동안 조속한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해 왔다”며 “이로 인해 남북 간 협력사업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북·미 비핵화 협상이 대북 제재 완화와 직결돼 있는 만큼 본격적인 실무협상으로 제재 완화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우선 광복절과 추석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과 아프리카돼지열병 공동 방역, 남북 공동 전사자 유해 발굴 등 그동안 북한이 응답하지 않던 인도주의적 사업을 위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추진될 수 있다. 또 9차례 신청 끝에 정부가 승인한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을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북·미가 실무접촉에서 일정 부분 ‘타협점’을 찾는다면 추가 북·미 정상회담 전 남북 정상회담이 먼저 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실무접촉에서 가시적 진전이 생겨 이를 토대로 남북 정상이 실천할 수 있는 합의사항이 마련된다면 북·미 정상회담 전 남북 정상회담이 먼저 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북·미 실무협상에서 성과가 나온다면 북·미 정상회담에 추가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남북 정상이 먼저 만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판문점 회동 이후 나온 북한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조·미(북·미) 두 나라 최고수뇌분(정상)들은 회담 결과에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며 “최고수뇌분들은 두 나라 사이 불미스러운 관계를 끝장내고 극적으로 전환해 나가기 위한 방도적 문제와 이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서로의 우려사항과 관심사적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전적인 이해와 공감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모두 35장의 사진을 게재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포함된 사진을 11장이나 실었다. 특히 남북 정상 간 친밀함이 부각된 사진이 많았다. 김 위원장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을 빗대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비판하는 등 ‘하노이 노딜’ 이후 문 대통령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 메시지를 내온 것과 크게 대비된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