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규정한 저농축 우라늄 저장 한도를 넘겼다. 이란이 핵합의를 위반한 것은 처음이지만 사실상 파기 수순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미국이 최근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를 중동에 투입한 상황에서 이란을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란 정부는 1일(현지시간) 2015년 미국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독일과 맺었던 핵합의에서 규정한 저농축 우라늄(LEU) 저장 한도를 초과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이날 이란이 저농축 우라늄의 저장 한도(육불화우라늄 기준 300㎏, 우라늄 동위원소 기준 202.8㎏)를 초과했다고 확인했다. AP통신은 IAEA가 확인한 이란의 저농축 우라늄 동위원소의 양은 205㎏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란은 “핵합의 위반이 아니다”면서 “서방이 대이란 제재를 복원했을 때 이란도 핵합의 이행 범위를 줄일 수 있는 핵합의 조항(26조 및 36조)에 따른 정당한 조처”라는 입장이다. 모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탈퇴에 대응해 자국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미국의 핵합의 탈퇴와 경제 제재로 인해 일방적인 핵합의 의무를 따를 수 없다”면서 핵합의 서명국들이 미국의 제재에 맞서지 않을 경우 농축 우라늄 저장 한도를 늘리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특히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탈퇴한 지 1년이 된 지난달 8일 저농축 우라늄과 중수의 저장 한도를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란은 또 오는 7일까지 핵합의 서명국들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재개하지 않으면 핵합의 불이행 수위를 끌어올리는 2단계 조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2단계 조처에는 핵무기 개발 신호탄인 우라늄 농축률을 현행 3.67%에서 20% 안팎까지 높이는 작업이 포함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란의 조처를 ‘불장난’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만약 뭔가가 일어나야 한다면 우리는 그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더 심한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며 은근한 경고를 날렸다. 최근 이란의 미군 무인기(드론) 격추에 대한 보복 타격 명령을 자신이 막판 취소한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우리는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놔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백악관도 스테파니 그리샴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란이 핵무기들을 개발하도록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 지도자들이 행동 방침을 바꿀 때까지 이란 정권에 대한 최대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란이 어떤 수준에서든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실수였다”면서 “이란에 대해 농축 전면 금지라는 오랜 비확산 기준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지난달 호르무즈해협 인근 유조선 피습과 이란군의 미군 드론 격추 사건 후 카타르에 F-22 스텔스 전투기를 5대 이상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이란이 양보 없이 대치 중인 상황에서 이란이 저농축 우라늄 저장 한도 초과에 이어 조만간 고농축 작업까지 돌입한다면 자칫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