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삑 삐익’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가 울리자 아르헨티나 주장 리오넬 메시는 허리에 손을 짚고 허공을 멍하게 바라봤다. 그 뒤로 경기장을 가득 채운 6만여 브라질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축구의 신’ 메시는 이렇게 또 다시 국가대항전 우승 문턱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아르헨티나는 3일(한국시간) 브라질 벨루 오리존치의 미네이랑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코파아메리카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에 0대 2로 무릎을 꿇었다.
메시는 국가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유독 작아졌다. 아르헨티나는 메시와 함께한 10번의 국제대회 중 월드컵에서 1번, 코파아메리카에서 3번이나 결승전에 올랐지만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클럽에서 보인 메시의 천재적인 플레이도 국가대표 경기에선 실종됐다. ‘역대 최고 축구선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고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16과 2018-2019 UEFA 네이션스리그 타이틀을 차지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메시는 2016 코파아메리카 결승에서 패한 뒤 한 차례, 지난해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에 그친 뒤 한 차례 국가대표 은퇴 위기를 겪다 지난 3월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을 통해 복귀했다. 어느덧 32세가 된 메시에겐 이번 대회가 절실했다. 경기 전 국가 제창을 하지 않아 ‘애국심 논란’을 빚었던 메시지만 8강전부터는 큰 소리로 국가를 부르며 변화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래서인지 메시는 이번 경기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8강전까지 페널티킥으로 단 한 골밖에 기록하지 못하며 부진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전방과 측면뿐 아니라 중원까지 내려와 공격 활로를 뚫었다. 세트피스 기회 때엔 날카로운 프리킥을 구사하는 한편, 몸을 내던지며 적극적으로 태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는 전반 초반부터 갈렸다. ‘카나리아 군단’의 주장 다니엘 알베스가 전반 19분 만에 아르헨티나의 왼쪽 측면을 휘젓고 올린 공이 호베르투 피르미누에게 연결됐다. 피르미누의 낮고 빠른 크로스를 가브리엘 제주스가 밀어 넣으며 브라질은 앞서 나갔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전반 30분 메시의 절묘한 왼발 프리킥을 세르히오 아게로가 헤딩으로 연결했지만 공은 크로스바를 때렸다. 후반 11분에도 메시는 페널티박스 왼쪽 바깥에서 정확한 위치선정으로 공을 잡은 뒤 강력한 왼발 슛을 시도했지만 이 공도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패색이 짙어진 아르헨티나는 후반 들어 앙헬 디 마리아, 지오바니 로 첼소, 파울로 디발라를 투입하며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대회 한 골도 실점하지 않은 브라질은 끈끈한 수비로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 한 번의 역습으로 쐐기골을 뽑아냈다. 후반 25분 역습에 나선 제주스가 수비의 마크를 극복하며 완벽하게 중앙으로 연결한 공을 피르미누가 여유 있게 마무리했다.
결국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남미 최강’ 브라질을 극복하지 못했다. 브라질은 에이스 네이마르의 부상 공백에도 치치 감독 부임 이후 단단해진 공수 균형이 빛을 발하면서 코파아메리카 통산 9번째 우승을 바라보게 됐다. 더불어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 당시 같은 경기장에서 독일에 1대 7로 대패한 ‘미네이랑의 비극’의 기억도 떨쳐내게 됐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