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를 ‘예상했던 범위 내의 조치’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처합동으로 비공개 태스크포스(TF) 2개팀을 운용하며 검토했던 시나리오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상 수위에 그쳤다지만 후폭풍은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수개월 동안 ‘파악’만 했을 뿐 일본 정부의 조치를 미리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후속 대책 마련에 급급한 모습도 부실대응 논란을 더한다. 당정청은 매년 1조원가량을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의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는 복안을 내놨다. 다만 이미 발표된 내용을 재발표한 수준이다. 그나마 기댈 곳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뿐인 상황이다.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 소송을 승소로 이끈 ‘드림팀’을 재가동하기로 했다.
3일 복수의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투 트랙’ TF를 가동해 왔다. 외교부를 주축으로 하는 외교 담당 TF, 산업통상자원부가 중심인 통상 담당 TF가 그것이다. 관련 부처 실무진은 수차례 비공개 회의를 가지면서 일본 정부의 동향을 주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는 예상했던 범위 안에 있었다”며 “소재·부품 산업 관련 대책을 준비한 것도 이를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TF의 구성 시기는 지난 1월 이후로 파악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측근인 아카이케 마사아키 참의원이 1월 열린 자민당 회의에서 “한국에 외교적인 조치는 물론 사람·물자·돈에 대한 제재를 실현 가능한 것부터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후에 TF가 구성됐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선 비공개 TF가 가동되고 있다는 단편적 정보가 드러나기도 했다. 외교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갈등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질의를 받자 “일본 측은 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할 경우 대응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며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답했었다.
이처럼 동향을 주시하기는 했지만, 일본 정부의 발표를 되돌리지 못했다. 그러면서 일도 커졌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일본산 소재 공급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정부는 일단 반도체 소재·부품 국산화를 추진해 맞대응하겠다는 복안을 내놨다. 정부는 3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부품·장비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경쟁력 강화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이 있다”고 발표했다. 핵심은 매년 1조원 규모의 R&D 투자다. 산업부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에 포함된 내용이다. 소재·부품특별법을 전면 개정해 100대 핵심 소재·부품·장비 기술개발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100대 품목 중에는 반도체 장비 등이 들어 있다.
또한 정부는 예고한 대로 WTO 제소를 추진키로 했다. 제소 절차를 담당할 팀으로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와 통상법무대응과가 낙점됐다. 통상분쟁대응과는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와 관련한 WTO 항소심에서 1심 패소를 뒤집고 역전승을 일궈낸 주역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량 제한의 일반적 철폐를 담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1조가 핵심”이라며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이종선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