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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이흥우] 치졸한 아베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가계는 화려하다.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를 두 차례 역임했고, 할아버지 아베 간은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작은외할아버지 사토 에이사쿠는 세 번 총리를 했다. 외상을 역임한 아버지 아베 신타로 역시 갑작스럽게 사망하지 않았다면 총리가 됐을 거다.

아베의 고향 야마구치현은 정한론의 본거지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요시다 쇼인은 대표적 정한론자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인 외할아버지 기시는 요시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반면 할아버지 아베 간은 군국주의에 비판적이었고, 전쟁을 반대했다. 아베는 외가의 DNA를 물려받은 듯하다.

일본 정치사에서 아베처럼 정권을 빼앗겼다 재집권한 경우는 드물다. 1차 집권 때 아베는 친한(親韓) 행보를 보였다.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우리나라를 방문해서는 한식 코스요리와 불고기, 갈비, 김치와 깍두기도 즐겨 먹었다.

그의 공언대로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정부 때 두 나라 정부 차원에서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으로 합의됐다. 그러나 문재인정부가 합의를 뒤집었다. 이를 빌미로 아베는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을 제한하는 경제 보복에 나섰다. 추가 보복도 예고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정치적 이유로 경제 보복을 못 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WTO 규정 위반’ ‘일본에도 손해’라는 비판이 거센데도 아베는 마이동풍이다. 외교 문제를 외교로 풀지 않고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이용해 일본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아베의 방식, 치졸하다. ‘트럼프의 푸들’이라는 별명답게 트럼프 흉내를 내고 있다. 아베와 트럼프는 급이 다르다. 아베는 본인이 푸들은 될 수 있어도 결코 트럼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일본의 보복 조치에 국내 반응은 의외로 차분하다. 민간 차원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 등 반일운동이 거세게 일 법도 한데 아직은 그렇지 않다. 일본의 감정적 조치에 우리는 이성적으로 대처한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다. 미셸 오바마가 2016년 미 민주당 공동 유세에서 공화당을 향해 했던 얘기를 아베에게 그대로 하고 싶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그들이 비열하게 행동해도 우리는 품격 있게 간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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