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대(對)일 강경대응 발언은 미·중 무역분쟁 식의 ‘무역전쟁 확전’ 의지 표명으로 읽을 수 있다. 일본이 한국만 ‘콕’ 집어 통상보복을 한 것처럼 한국도 일본을 대상으로 ‘동일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정부는 자유무역의 틀 안에서 국제공조, 외교적 압박,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대응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태 해결이 안 되고, 일본이 한층 강경하게 나오면 한국산 제품의 대일 수출 규제 같은 방식도 불사할 기세다. 한국도 ‘보호무역’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정부 내부에서는 확전을 우려하고 감정적 대응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기류도 흐른다. 한국의 산업구조를 면밀히 분석해 약점을 공략한 일본과 달리 우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한다. 보호무역에 돌입하면 기업이 부수적인 추가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전문가들은 ‘확전’이라는 최악 사태가 빚어지기 전에 정치·외교 수단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역전쟁 확전을 결정지을 방아쇠는 ‘기업의 실질적 피해’다. 예를 들어 반도체 업계에서 일본이 수출을 제한한 3개 핵심소재의 제고가 바닥나고 생산 라인이 멈추는 순간이 확전 시점이 된다. 일본이 오는 18일 추가 조치를 예고한 만큼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품목에서 먼저 불길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단계 전까지는 자유무역 테두리 안에서 대응한다는 기조가 유지된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4~8주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양자협의 청구서를 WTO에 제출할 계획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우호적 여론이 조성되도록 외교 노력을 기울이는 작업도 병행한다.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국제공조 방안 등 여러 가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책으로는 부품·소재 산업 육성으로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작업에 들어간다. 문 대통령도 민관 비상대응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대일 부품·소재 무역적자 해소의 계기로 삼자고 강조했다. 산업부는 이르면 다음 주에 육성 방안을 내놓는다.
이후부터는 전략상 노출하지 않고 있는 ‘묘수’를 발동한다는 계획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유 본부장은 “상대방이 알게 되면 준비하게 돼 있으니 말을 아끼겠다”고 말했다. 산업계 안팎에선 한국이 경쟁력 우위를 점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등을 일본에 수출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식의 대응도 거론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맞불을 지르는 셈이다.
그러나 확전을 선택하면 ‘맞대응’에 따른 후폭풍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일본과 똑같이 한국산 제품 수출을 통제할 수 있지만, 한국의 일본산 부품·소재 의존도가 더 크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진경제실장은 “똑같이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부분에 대해 수출을 규제할 수는 있다. 정부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조치를 취하겠지만, 맞대응을 해도 우리 기업의 피해가 걱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제가 아닌 외교 차원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양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하다. 산업계에선 외교로 풀어야 할 문제이고, 강대강의 맞대결 구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은 “이번 사안은 무역분쟁이 아니다. 외교적 해결이 핵심이 돼야 한다”며 “무역 조치는 한쪽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신준섭 전슬기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