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키로 하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미국을 방문해 공개활동을 하면서 미·중 관계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미·중 양국 정상이 재개키로 합의했던 무역협상은 향후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미국은 기술유출 단속과 외국인 투자검열을 강화하는 등 대중국 기술유출 차단을 위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산업안보국 콘퍼런스 연설에서 “민간기술과 군사기술의 경계가 어느 때보다 희미해졌다”며 “첨단기술 우위를 지키고 강화해 미국의 장기적 이익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연설 내용은 14일(현지시간) 미 상무부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로스 장관은 수출규제가 중국의 기술굴기, 특히 군사기술을 겨냥한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중국의 민군 융합 전략을 경계한다”며 “중국은 군사분야 현대화를 위해 미국 기술을 집요하게 탐내고 있으며,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로스 장관은 또 “중요한 신흥기술이 언제 표적이 되는지 추세 파악을 위해 외국인 투자의 전체 스펙트럼을 살펴보고 있다”며 미국 기술기업을 집중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미국이 대만에 22억 달러(약 2조6000억원) 이상의 무기 판매 계획을 추진하고, 차이 총통의 미국 경유를 적극 허용하는 등 대만 카드로 중국을 압박하자 중국은 ‘미국 기업 제재’로 맞서는 등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2일 온라인 성명을 통해 “중국은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 대만 무기 판매에 참여하는 미국 기업에 제재를 시행할 것”이라며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파는 것은 국제법과 하나의 중국 원칙 등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중국의 주권과 국가안전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동유럽을 순방 중인 왕이 외교부장도 미국을 향해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이 총통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카리브해 4개국 순방길에 미국을 경유해 공개활동을 하자 중국은 강력 반발했다. 차이 총통은 현직 대만 총통으로는 처음으로 우방 유엔주재 상임대표들이 마련한 환영연에 참석하고, 다음 날 대만·미국 기업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인 공개활동을 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차이 총통이 컬럼비아대학 연설에서 홍콩 시위를 거론한 데 대해 “대만인들의 일국양제에 대한 이미지를 손상하고, 반발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겅 대변인은 “미국과 대만의 공식 왕래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