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26)은 어김없이 빨간색 긴 바지를 입었다. 하루 전만 해도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라운딩을 펼쳤다.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였지만, 김세영은 최종 라운드마다 ‘의식’처럼 입었던 빨간색 긴 바지를 다시 입고 나타났다.
2위 렉시 톰슨(24·미국)과 1타차 선두에서 출발했다. 김세영과 챔피언조에서 동반 라운딩을 펼친 톰슨은 안방 갤러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았다. 하지만 김세영은 주눅 드는 법이 없었다. 최종일 빨간 바지의 기운으로 역전을 하거나 승리를 굳히던 기세는 이날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2번 홀(파3)부터 버디를 낚아 톰슨을 3타차로 따돌렸다.
기선을 제압하자 독주를 시작했다. 7번부터 11번 홀까지 5홀 연속 버디를 잡아 톰슨을 6타 차이로 밀어냈다. 톰슨은 17번 홀에서 버디, 18번 홀(이상 파5)에서 이글을 잡고 3타를 줄이는 뒷심을 발휘했지만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김세영은 18번 홀에서 파 퍼트로 우승을 확정했다.
김세영은 15일(한국시간)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 하일랜드 메도스 골프클럽(파71·6550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1개를 묶어 6언더파 65타를 적어냈다. 최종 합계 22언더파 262타로 2위 톰슨을 2타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지난 5월 메디힐 챔피언십에 이어 올 시즌 2승, 투어 통산 9승을 수확하고 상금 26만2500달러(약 3억1000만원)를 손에 넣었다.
‘빨간 바지의 마법’은 이제 메이저대회를 향하고 있다. 김세영은 오는 25일 열리는 에비앙 챔피언십, 그 다음 주인 8월 1일 AIG 위민스 브리티시오픈 중 한 대회에서만 우승해도 통산 10승을 쌓고 생애 첫 메이저대회 정상을 밟을 수 있다.
김세영은 한국 선수의 LPGA 다승 부문에서 박세리(25승) 박인비(19승) 신지애(11승)에 이어 최나연과 함께 공동 4위에 올랐지만 정작 메이저대회만 정복하지 못했다. 9승 이상 거둔 한국 선수들 가운데 ‘메이저 무관’은 김세영이 유일하다. 그의 메이저대회 최고 성적은 2015년 LPGA 챔피언십, 지난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의 준우승이 전부다.
김세영은 “다음 목표를 세우지 않았지만 아직은 이루지 못한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선수들은 올해 19개 대회의 절반에 가까운 9승을 합작, 역대 LPGA 투어 한 시즌 최다승 기록(2015·2017년 15승) 경신 가능성을 높였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