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고서적 수입판매상 배익기(56)씨가 “문화재청의 서적 회수 강제집행을 막아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이로써 문화재청은 절차에 따라 상주본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상주본의 소재는 배씨만 알고 있어 실제 회수 가능성은 미지수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최근 배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청구이의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대법원은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원심 판결을 그대로 따르는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렸다.
상주본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 싸움은 2008년 시작됐다. 경북 상주에 살던 배씨는 그해 7월 “집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며 상주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러자 같은 지역에서 골동품 판매업을 하던 조모씨가 “가게에서 상주본을 훔쳐간 것”이라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1년 조씨가 낸 민사소송(물품 인도 청구)에서 상주본의 소유권이 조씨에게 있다고 확정 판결했다. 조씨는 이듬해 문화재청에 상주본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뒤 세상을 떠났다. 상주본 소유권은 현재 국가로 넘어간 상태다.
그런데 배씨가 상주본을 훔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에 대한 법원 판단이 갈리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배씨는 민사 판결을 근거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2014년 대법원은 배씨가 상주본을 훔쳤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배씨는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으니 상주본의 소유권은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상주본의 소재는 밝히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은 2017년 “상주본을 인도하지 않으면 반환소송과 함께 문화재 은닉에 관한 범죄로 고발하겠다”고 통보했다. 배씨는 무죄 판결을 근거로 국가의 강제집행을 막아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 2심은 “무죄 판결은 증거가 없다는 의미일 뿐 배씨가 상주본을 훔치지 않은 게 증명됐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배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도 하급심과 다르지 않았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