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한·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관여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똑같이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중 어느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렵지만,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손놓고 구경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을 다녀온 외교부 당국자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현재 한·일 간 상황이 악화돼선 안 된다는 데 적극 공감했다”며 “어떤 합당한 역할이 있는지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어 “미국에서 만난 인사들 대부분이 인게이지먼트(관여)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동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측은 한·일 모두 미국과 아주 가까운 맹방이기 때문에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렵다는 솔직한 의견도 냈다”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갈등이 더 심각해지지 않도록 관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미국이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관여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적극적인 개입이나 중재에 나서기보다는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와 같은 적극적인 한·일 갈등 중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미국이 어느 한쪽 편을 들다가 잘못하면 양측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는 중재에 나서기 어렵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물밑에서는 양국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교부 당국자는 경제 분야의 갈등이 안보 분야에 영향을 미쳐 협력을 해치는 경우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게 미국의 핵심적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 도래하는 3개의 중요한 시한 언저리에 일본의 추가적 도발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요한 시한 3개는 오는 18일과 21일, 24일이다. 18일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관한 일본의 중재위원회 구성 요청에 우리 측이 답해야 하는 시한이고, 21일은 일본 참의원 선거일이다. 24일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시 절차 간소화 대상 국가 목록)에서 빼기 전 의견을 취합하는 시한이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