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보편적인 서민 아버지 ‘김승호’

한국 영화 100년사에 있어 첫 번째 아버지상을 마련해준 배우 김승호.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시집가는 날’의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다 함께 찍은 단체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 ‘로맨스 빠빠’의 극 중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인간미 넘치는 소시민적 아버지를 연기한 ‘마부’의 극 중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수식어가 있다. 바로 ‘아버지’라는 말이다. 특히 배우를 지칭할 때 쓰인다. 외국의 배우를 일컬을 때 ‘시대의 아버지’ ‘국민 아버지’ 같은 수식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톰 행크스가 미국의 얼굴이고 제임스 딘이 청춘의 초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배우들이 ‘아버지’ 같은 특별한 사회적 위치에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만 시대의 아버지, 국민 어머니와 같은 수식어가 배우를 꾸며준다. 이는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알려준다. 우선 한국 영화 100년사에 있어서 ‘아버지’는 매우 중요한 극 중 인물이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들에 있어 ‘아버지’는 주요 배역과 관계를 공유하는 조연인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한 남자의 정체성 중의 하나가 아버지일 뿐이지 아버지 자체가 정체성 전부인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한국 영화에서는 좀 다르다. 유별나게 한국 영화에서 아버지는 사회적 호명이자 정체성 자체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영화에서 아버지는 단순한 배역이 아니라 어떤 이데올로기적 페르소나라고 말하는 게 옳을 듯싶다.

국민 아버지가 존재할 만큼 한국의 서사에 있어서 가족은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소재였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기, 1960년대를 거치면서 가족은 무너진 질서와 국가를 재건하는 데 있어 근본이 되는 사회적 기능으로 여겨졌다. 폐허 상태의 한국 사회를 재건할 수 있는 주체로서 ‘아버지’가 호명된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을 일으키고 지켜주는 울타리이기도 했지만 어떤 형태로든 강력하게 존재해야만 하는 사회적 어른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김승호(1917~1968)는 한국 영화사에 있어서 첫 번째 아버지상을 마련해준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대중적으로, 비평적으로 김승호를 각인시킨 영화 ‘시집가는 날’(이병일·1956)에서도 그가 맡았던 역할은 아버지였다. 이후 ‘로맨스 빠빠’(신상옥·1960), ‘박서방’(강대진·1960), ‘마부’(강대진·1961)와 같은 그의 대표작에서도 그는 언제나 아버지였다. 그는 회사원, 잡일꾼, 마부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아들과 딸들을 여럿 거두는 아버지로 다가왔다. 당대를 살았던 수많은 아버지의 얼굴, 그 얼굴이 바로 김승호의 얼굴을 통해 재현됐다. 한국 영화는 김승호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했고, 이후 김승호의 얼굴은 한국의 아버지를 대표했다.

인간 김해수와 배우 김승호

김승호(金勝鎬)의 본명은 김해수(金海壽)이다. 그는 1918년 7월 13일 강원도 철원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외아들의 교육을 위해 김승호의 부친이 서울로 이사해 종로 청진동, 당시 서울 한복판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김승호가 직접 술회한 내용을 따르자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을 좋아했고, 연극 무대에 대한 열망을 가졌다고 한다(‘나의 청춘과 예술의 편력’, 국제영화, 1959년 3월호). 그러던 그가 당대 최고의 신식 극단이었던 동양극장 연구생이 되었고, 그곳에서 훈련을 거쳐 연극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김승호의 영화 데뷔작은 동명 연극을 각색한 동양극장의 인기작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이명우·1939)였다. 그는 해방 후 최초로 항일 독립 투쟁을 담은 영화,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1945), 김기영 감독의 ‘양산도’(1955) 등에 출연하며 점차 연극에서 영화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영화배우 김승호로 자리를 잡게 된 작품은 앞서 언급한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이었다. 1956년에 개봉한 ‘시집가는 날’은 한국 희극 영화의 가능성과 역량을 확인시키며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당시 일본에서 개최된 제4회 아시아 영화제 특별상인 최우수 희극영화상까지 수상하면서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의 작품 자리에 오르게 된다.

중요한 것은 배우 김승호의 역할이다. 그는 이기적이지만 어수룩한 욕심쟁이 아버지를 연기해 얄밉지만 싫지는 않은 희극적 악인을 창조해낸다. 당대 언론 기사처럼 ‘시집가는 날’은 말 그대로 ‘김승호의 영화’(한국일보, 1957년 5월 12일자)였다. 이후 유현목 감독의 ‘인생차압’(1958)에서도 기회주의적이며 속물적인 주인공 이중생을 연기해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희극적 악인의 면모를 입체화했다. 50년대 한국 사회를 관통하던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인물의 유형이 바로 김승호의 연기를 통해 생생히 전달된 셈이다.

이렇듯 아이러니한 캐릭터의 미묘한 부분을 담아내는 데도 탁월했지만 무엇보다 김승호는 시대의 보편적인 서민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김승호의 대표작인 ‘로맨스 빠빠’의 아버지는 그런 의미에서 60년대가 상상했던 좋은 아버지의 전형적 모습이라 볼 수 있다. ‘로맨스 빠빠’의 아버지는 두 아들과 세 딸의 아버지로 생명보험 회사에 다니는 52세 남자이다. 대학 졸업반인 큰아들, 대학 졸업 후 결혼을 앞둔 큰딸, 대학생인 둘째 딸 곱단, 고3 둘째 아들 바른이, 막내딸 여고생 이쁜이로 구성된 이 가족에서 아버지는 가족들의 민원 창구이자 유일한 수입원인 한편 출근길 꽃 한 송이를 잊지 않는 로맨티시스트로 그려져 있다. 고작 4만5000원의 월급으로는 막내아들의 새 구두를 사줄 수도, 대학생 딸의 나들이 바지를 사줄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는 막내딸 앞으로 온 연애편지를 보며 화내기보다는 설렘을 느끼는 따뜻한 아버지로 묘사된다.

엄밀히 말해 ‘로맨스 빠빠’에 재현된 가족의 모습은 당대 평범한 표본 가족이라기보다는 표본이었으면 좋을 판타지로서의 가족 유형에 가깝다. 자애로운 아버지, 가족을 사랑하는 구성원들, 아버지의 그늘 아래 편안히 대학생활을 할 수 있는 자식들의 모습이란 먹고사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 낭만적 환상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로맨스 빠빠’가 낭만적 판타지의 아버지 모습이었다면 ‘박서방’과 ‘마부’에 그려진 아버지상은 말 그대로 당대 소시민적 아버지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온 동네 궂은일을 마다않는, 사람 좋은 박서방은 자식들이 제 자리를 잡는 날을 기다리는 소박하고 순진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마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늘 남편에게 구박받고 쫓겨 오기 일쑤인 큰딸이 안쓰럽지만 그럼에도 돌려보낼 수밖에 없는, 그는 시대의 이데올로기 안에 고스란히 머무르기에 어찌할 바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아버지로서 갖춰야 할 인간애를 잃지 않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시대를 주도하거나 바꾸는 영웅적 캐릭터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힘겹게 따라가야 하는 남자, 모순과 고통이 가득한 삶일지라도 그것을 최대한의 힘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한 남자, 가장,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김승호를 통해 제시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야말로 당대 사회가 사회의 남자들에게 가장 요구하고 싶었던 정체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작은 단위의 사회를 가까스로 지켜가는 인물, 그 서민형의 모델이 바로 김승호로 압축되었던 셈이다.

삶 속의 연기, 연기 속의 삶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0년대 액션물로 큰 사랑을 받았던 배우 김희라는 김승호의 아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승호는 그가 ‘로맨스 빠빠’에서 맡았던 아버지의 나이인 52세를 맘껏 누려보지도 못한 채 52세의 나이로 1968년 세상을 등졌다. 아들딸 여럿 두고 그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연기해 왔던 김승호였지만 막상 그의 삶에서 그가 진짜 아버지 역할을 한 것은 그리 오래지 못했다. 그는 1960년대 한국 영화 중흥기를 거치며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수십 편의 작품에 그 흔적을 남겼다.

김승호의 연기는 그만의 특유의 친근한 표정과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기억된다. 대개 유명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더빙에 의존하던 시절, 김승호는 언제나 자신의 육성으로 연기하던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만약 김승호의 연기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50~60년대의 삶을 감지하고, 그 시절 아버지의 삶에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면 이는 유일무이한 목소리의 힘이 컸으리라. 아버지가 시대의 얼굴이던 시절, 그 아버지의 얼굴로서 한 시대를 전달했던 배우, 김승호 그의 진짜 목소리 말이다.

<강유정 영화 평론가·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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