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학교에서는 체육시간만 되면 건장한 체격의 교사가 몽둥이를 들고 호통을 치며 학생들을 줄을 세우고 흙바람 날리는 운동장을 뛰게 했다. 체육교과에 가까운 활동은 교사가 던져준 공으로 축구나 농구를 하는 게 전부였다. 경쟁을 강요받는 과정에서 군대식 기합을 받는 일도 허다했다. 지금은 어떤가. 문화는 달라졌다. 강요와 지시의 풍조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입시위주의 문화에 체육 자체가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체육을 하는 것이 학업에 장애로 치부될 정도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땀흘리며 뛰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게 어느새 익숙해진 현실이다.
학교체육이 억지로 하는 것에서 어느덧 있어도 없는 듯한 과목으로 인식되는 등 극과 극을 오가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체육은 아무 값어치가 없는 것일까. 미국 등 선진국 학생들이 학교체육에서 터득한 체력을 바탕으로 학업에 매진하면서 세계를 이끄는 동량이 되고 있는 현실이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걸까.
국민일보는 이런 궁금증을 갖고 선진국형 학교체육을 실시하는 학교와 학생들을 찾아가 봤다. 그리고 거기서 희망을 발견했다. 학생이 스스로 원하는 종목을 선택하고, 리그 운영과 규정을 결정하고 있다. 아침을 걷기나 줄넘기로 시작하는 학생들은 이 시간을 고대하고 있다. 체육을 하면 학업을 등한시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은 편견으로 드러났다. 이들 학교에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높아졌고 학부모들도 이를 적극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체육 전문가들은 학교체육이 인간의 뇌와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청소년이 반드시 접하고 즐겨야하는 분야라고 힘주어 말했다.
조남기 숙명여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24일 “인내, 배려, 협동과 같은 사회성은 교실의 수업만으로 완전하게 학습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학교체육을 통해 이 같은 문화를 형성하면, 넓게는 국가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체육을 열심히 하는 것이 성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뇌과학 차원에서 설명했다. 조 교수는 “30분만 운동해도 학업과 사회적 역량이 향상된다”며 ”운동이 병행되지 않으면 뇌가 본질적으로 퇴화할 수밖에 없기에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체육활동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학교체육의 효과가 뚜렷하지만 입시에 집중된 한국의 교육환경에서 학교체육을 마지못해 하는 과욋일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많다. 이를 해소하고 현장에 보다 수월하게 접목하려면 청소년의 선호와 정책의 조화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김대희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원은 “학교에서 체육은 신체활동을 위한 유일한 수업이다.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와 같은 해외 빅리그가 실시간으로 소개되는 요즘, 학생들의 스포츠 눈높이를 충족시킬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청소년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2020 도쿄올림픽에 스케이트보드와 BMX 묘기자전거를, 2024 파리올림픽에 비보잉을 종목으로 채택했다”며 “학교체육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학생의 재미를 유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행 학교체육 시스템으로는 학생들의 수요를 따라가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가 성별 기호별 체형별 맞춤형 종목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일선 학교부터 종목별 체육단체,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실효성도 문제다. 일선 학교에서 체육활동이 보장됐지만, 실질적인 학생의 참여율은 아직 높지 않은 수준이다. 김택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은 “주당 2~3시간의 체육활동을 보장하고 있지만, 일선 교등학교에서 일주일에 2시간의 체육활동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청소년기의 체육활동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접점이자 사회갈등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여기에 한국의 미래 발전이 달려 있다는 점을 학교와 정부가 분명히 인식하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글·사진=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