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에 대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최근 홍콩 시위대가 중국 국가 휘장을 훼손하고, 시위 현장에 미국 성조기까지 등장하는 등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이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홍콩 공무원들도 시위대 지지 집회를 열기로 하고, 시위 양상도 점차 격화되는 분위기여서 중국 정부의 엄포가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의 양광(사진) 대변인은 29일 기자회견에서 “홍콩 시위가 일국양제 원칙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며 엄정 대처 방침을 밝혔다. 중국 중앙정부에서 홍콩 정책을 총괄하는 홍콩·마카오판공실이 홍콩 내정 관련 기자회견을 한 것은 1997년 영국이 홍콩을 반환한 이후 처음이다.

양 대변인은 “법치는 홍콩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핵심 가치이며, 홍콩의 번영을 지켜주는 초석”이라며 “소수의 사람들이 제멋대로 짓밟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과격분자들의 폭력 행위는 홍콩의 법치와 사회질서를 해치고 홍콩시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위협하며, 일국양제 원칙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중국 국방부는 지난주 국방백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인민해방군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으나 실제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우세한 상황이다. 양 대변인은 또 중앙정부가 캐리 람 홍콩 특별행정장관의 통치와 홍콩 경찰의 엄격한 법 집행을 굳건히 지지한다며 홍콩 각계 인사가 폭력에 분명히 반대할 것을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범죄인 인도법안(일명 송환법) 반대로 시작된 홍콩 시위는 지난 21일 일부 시위대가 중국의 국가 휘장을 검은 페인트로 훼손하고, 같은 날 흰옷을 입은 괴한들이 시위대를 쇠파이프 등으로 구타하는 ‘백색 테러’가 벌어지면서 더욱 꼬이고 있다.

홍콩 공무원들의 시위 참여 조짐도 보인다. 홍콩 정부의 여러 부처 공무원들이 다음 달 2일 시위대를 지지하는 집회를 가질 것이라고 성명서를 통해 밝혔고, 집회에는 500여명의 공무원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홍콩의 공무원 단체가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는 것은 처음이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도 격화되고 있다. 지난 27일 시위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던 경찰과 시위대는 일요일인 28일에도 대치를 이어갔다. 홍콩 시민들은 오후 4시쯤부터 코즈웨이베이, 완차이 등 여러 곳으로 흩어져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도로 난간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경찰과 맞섰고, 시위대가 흩어지지 않자 경찰은 오후 7시쯤부터 최루탄을 쏘면서 본격적인 해산 작전에 돌입했다.

시위대는 경찰에 벽돌이나 병을 던지고 카트에 폐지를 담아 불을 붙인 뒤 경찰쪽으로 밀기도 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일부 시위대가 활과 화살 같은 도구를 들고 있는 것도 목격됐다. 경찰은 이날 불법 집회와 공격용 무기 소지 혐의로 최소 49명을 체포했고, 시위 과정에서 최소 16명이 다쳤다.

이날 시위에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도 등장했다. 홍콩 재야연합이 오후 3시부터 연 ‘백색 테러’ 규탄 집회에서 한 시민이 대형 성조기를 흔드는 장면이 포착됐고, 거리행진에 나선 시위대 사이에서도 간간이 성조기가 눈에 띄었다. 미국이 홍콩 사태 해결에 개입해 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