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새 30% 늘어… 30대가 78%
일반 증상과 비슷해 놓치기 쉬워 불규칙한 자궁수축 있으면 의심
냉 색깔 변하면 꼭 진찰 받도록… 낙태 횟수 많아도 그만큼 위험
임신부 A씨(33)는 올해 초 임신 23주에 자궁경부(자궁 초입)가 열리고 태아를 둘러싼 양막이 밖(질 내부)으로 빠져나오는 아찔한 상황을 맞았다. 자궁 경부가 힘없이 열려 태아가 속절없이 자궁 밖으로 밀려 나온 것이다. 밖으로 보이는 양막의 지름이 무려 6㎝에 달해 매우 위급했다. 다니던 개인병원에선 “아기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A씨는 낙담하지 않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선 “아직 가능성 있다”며 서둘러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양막 내 압력을 낮추기 위해 양수를 외부로 뺀 후 기구를 이용해 양막을 자궁 안으로 조심스럽게 다시 밀어 넣고 자궁경부를 네차례 묶어줬다. 큰 위기를 넘긴 그녀는 30주까지 임신을 유지한 후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재빠른 대처로 조산을 막고 태아와 산모의 목숨도 구한 것이다.
반대로 임신 19주에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B씨(32)는 조기 발견이 늦어 뱃속 아기를 포기해야 했던 아픈 경험을 했다. 냉이 갑자기 많아지고 1주일에 한 번꼴로 찾아오던 배 뭉침(자궁수축)이 잦아졌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임신 중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매월 정기검진 외에 추가 진료를 받지 않은 것. 얼마 뒤 갑작스럽게 진통이 찾아와 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양막이 자궁 밖으로 나온 지 이미 오래됐고 조기 진통이 진행되고 있어 응급수술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B씨는 결국 유산했다.
A·B씨의 사례는 합계 출산율이 한 명에도 못 미치는 저출산 시대에 조산을 초래하고 태아 생명까지 위협하는 ‘자궁경부무력증’에 대해 임신부들의 경각심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자궁경부무력증은 임신 말기까지 딱딱하게 유지돼 태아를 보호해야 할 자궁경부에 힘이 없어 진통 없이 태아가 자궁 밖으로 나오는 병이다.
최근 늦은 결혼 등으로 고령 임신, 시험관 임신이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고위험 임신부는 임신 18~23주에 자궁경부무력증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임신 중반기 조산 원인의 10%, 태아 손실의 20~25%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1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자궁경부무력증 진료 환자는 2014년 4646명에서 지난해 6033명으로 5년간 2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통계청 출생아 수가 43만5400명에서 32만6900명으로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출생아 수 대비 자궁경부무력증 환자의 증가 비율은 더 클 것으로 추측된다. 5년간 연령별로는 30대가 78%(2만1023명)로 가장 많았고 20대(17%) 40대(4%) 10대(0.18%) 순으로 뒤를 이었다.
자궁경부무력증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궁경부에 선천적 이상이 있거나 후천적으로 손상을 받은 경우 생기는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고령 임신부는 태아를 지탱하는 자궁경부에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시험관 임신은 시술과정에서 자궁경부 손상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엔 건강검진이 활성화되며 자궁경부암 전(前) 단계인 ‘자궁경부이형성증’의 발견과 절제 수술이 늘고 있는 현상과 자궁경부무력증 증가 추세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궁경부암 전 단계로 진단받으면 자궁경부 일부를 원뿔 모양으로 떼내는 수술을 하게 되는데, 이때 불가피하게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 수술 후 자궁경부무력증 위험이 4배 높아진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또 임신 초기(14주 이전)에 인공임신중절, 즉 낙태를 위해 인위적으로 자궁경부를 열 경우에도 손상될 수 있다. 한림의대 동탄성심병원 경규상 교수는 “인공소파술(수저처럼 생긴 기구를 자궁에 넣어 아기와 태반조직을 긁어냄)용 기구로 자궁경부를 억지로 벌리면 찢어질 수 있고 낙태 횟수가 많으면 그만큼 손상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다시 임신할 경우 자궁경부무력증 위험이 높아 태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자궁경부무력증 증상으로는 질 분비물(냉) 증가와 잦은 배 뭉침 등이 있지만 임신 중 겪는 일반 증상과 비슷해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또 특별한 증상 없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어 조기발견이 어렵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양막이 밖으로 삐져 나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맑은 냉이 많아지면 때로는 양수가 나오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자궁경부무력증이 진행되면 냉은 투명에서 흰색, 옅은 노랑색, 핑크색, 황갈색으로 색이 변한다. 또 이슬과 비슷하게 피가 냉과 섞여 나오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있으면 꼭 자궁경부를 진찰로 확인해야 한다.
임신부들은 자궁이 수축되면 배가 뭉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보통 임신 후반기인 30주 이후 규칙적으로 일어난다. 이보다 이른 임신 20주 안팎에 불규칙한 자궁수축이 있으면 자궁경부무력증을 의심해야 한다.
양막이 오래 자궁 밖으로 노출되면 세균 감염이 있을 수 있다. 이땐 항생제 사용 후 자궁경부를 묶어주는 응급수술(자궁경부결찰술)을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항생제를 쓰면서 자궁수축이 없는 것을 확인하느라 길게는 하루 이상 경과를 지켜봐야 해 사실상 응급수술이 어렵게 된다. 또 감염에 의한 염증으로 조기 진통이 올 경우 무리한 응급수술은 오히려 자궁수축을 자극해 조산을 더 앞당길 수도 있다.
경 교수는 “자궁경부무력증 환자들 중에는 안타깝지만 뱃속 아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급하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면서 “그렇다고 부적합 환자에게 무리하게 응급수술할 경우 출산이 계속해서 진행되며 자궁경부가 찢어지고 흉터가 남아 다음 임신에도 안 좋은 영향을 주는 만큼, 반드시 적합한 환자에게 시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응급수술을 받더라도 조기 진통이 생기거나 양막이 다시 빠져 나와 유산할 확률이 약 70%에 달한다.
자궁경부무력증 진단을 받으면 다음 임신부터는 12~14주에 자궁경부를 묶어주는 수술을 미리 받는 게 안전하다.
경 교수는 “임신 중기에 자궁수축을 동반하거나 조산·유산 경험이 있다면 자궁경부무력증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더라도 초음파검사에서 짧은 자궁경부를 가진 게 확인되면 위험성이 큰 만큼, 정기 진찰을 통해 몸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