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 발간된 한 문화전문지에서 신성일을 “비교 불가의 대한민국 대표 스타 아이콘”으로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총 535편의 필모그래피를 자랑한다. 영화평론가 김종원이 적시했듯, ‘세계영화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미지·기호로서의 스타는 말할 것 없고, ‘문화자본’ ‘사회적 현상’으로서 신성일만큼 스타에 완벽히 부응하는 인물은 없다. 한국영화 사상 신성일만큼 장기간 스타 지위를 누린 배우는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듯싶고.”(‘쿨투라’, 2019년 6월호)
신성일에 필적할 단 한 명의 스타
지금 이 순간, 상기 진단을 수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여러모로 신성일에 필적할 수 있을 딱 한 명, 예외적 존재가 있다. 다름 아닌 김지미다. 불세출의 미모와 여장부다운 강인한 실제 캐릭터를 바탕으로 수십 년간 우리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영화사의 대표적 여배우. 한때 전 세계 미인을 대표하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비교되며 ‘동양의 리즈 테일러’ 등으로 일컬어졌으며, ‘100년에 한 번 나오기 어려운 미모의 스타’ 등의 찬사가 따라다니곤 했던 스타 중의 스타….
그녀는 열여덟 여고생 시절 “미약하나마 현대여성의 하나의 유형으로서 지금껏 없던 청신감을 주는 신인”(김종원)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본명 김명자에서 예명 김지미로 재탄생시킨 ‘황혼열차’(김기영·1957)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며 일찌감치 스타덤을 예약한다. 그녀는 1960년대 초중반에는 최은희 문정숙 도금봉 엄앵란 등의 선배들과, 60년대 중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는 당대 여성 트로이카 문희 윤정희 남정임과 경쟁을 벌여야만 했다. 주지하다시피 그 경쟁들의 최종 승자는 김지미였다.
흔히 한국영화의 암흑기로 일컬어지는 70년대를 거치며 은막을 아예 떠나거나 2선으로 물러난 다른 여걸들과 달리 그녀는, 80년대에도 건재를 과시하며 생애의 대표작들을 빚어냈다.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과 ‘티켓’(1986) 등이 그들이었다. 배우, 제작자 외에도 90년대 이후로는 영화인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대위 공동위원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약하며 특유의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영화계의 맏언니 역할을 ‘열심히’ 수행했다. 2002년 영진위 위원을 그만두고 두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이주,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살기 전까지는. 2010년 제15회 부산영화제에서는 2007년 김승호에 이어 배우로는 두 번째로, 여배우 중에서는 최초이자 아직도 유일하게 회고전이 열렸다.
80년대까지 건재를 과시한 여걸
출연 편수부터 보자.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김지미의 출연작은 최후의 주연작 ‘명자 아끼꼬 쏘냐’(이장호·1992)를 포함해 376편으로 공식 기록돼 있다. 흔히 한국 배우 중 최다 출연 기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신성일에 비해 150편가량이 적다. 하지만 그 이상의 편수를 말하는 기사들이 없지 않다. ‘영화잡지’ 1970년 12월호는 “김지미양이 이번 ‘무녀도’에 출연함으로써 500편의 영화에 출연한 기록을 세웠”단다. 2010년 회고전을 맞아 출간된 도서 ‘그녀가 허락한 모든 것-스타, 배우, 그리고 김지미’에 실린 심층 인터뷰에서는 700여편이라고 명시돼 있다. 기억의 한계상 과연 어느 것이 사실일지 여부는 김지미 본인도 확언할 수 없을진대, 여하튼 500편 이상이라면 신성일과의 비교는 물론 최다 출연 기록까지 김지미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 대중적 인기를 자양분 삼는 스타성이나, 길고 질긴 연기자로서 생명력, 제작 및 기획, 여타 영화인으로서의 활동성 등에서도 김지미는 신성일에 비견되기 부족함 없다.
이쯤에서 김지미에 대한 이런 극찬성 평가는, 이번 원고를 준비하며 집중 재조명한 결과임을 고백해야겠다. 사실 난 그동안 ‘스타 김지미’는 충분히 인정해왔으나, ‘배우 김지미’는 그다지 높이 평가해 오질 않았다. 그녀의 연기가 신통치 않아서는 아니었다. 여느 평론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기를 중시하긴 했어도, 무엇보다 감독 위주의 비평 관행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해서였다. 또 내가 본 수십 편쯤밖에 되지 않을 김지미 출연작 중에는 내 인생의 베스트 한국영화 목록에 들 만한 영화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해 작심하고 선정한 100선에도 고작 2편만 포함돼 있을 뿐이다. 평론가들이 김지미 최고 연기작으로 뽑곤 하는 두 편, ‘길소뜸’과 ‘티켓’이다. ‘티켓’은 김지미가 가장 애착을 보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내게도 임권택 전작(全作) 중 최고작으로, 한국영화 베스트10 안에 진입해 있는 걸작이다. 이러니 김지미 그녀가 화제작은 수두룩해도, 정작 대표작은 거의 없는 스타-배우로 평해진다 한들 하등 이상할 게 없을 터.
그 점은 부산영화제 회고전에서 선보인 8편의 영화를 들여다봐도 당장 드러난다. ‘길소뜸’과 ‘티켓’ 외에 70년대 작 3편 ‘토지’(김수용·1974) ‘육체의 약속’(김기영·1975) ‘을화’(변장호·1979), 60년대 작 2편 ‘불나비’(조해원·1965)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이성구·1966), 그리고 ‘고개를 넘으면’(이용민·1959)과 함께 필름이 남아있는 50년대 두 편 중 한 편인 ‘비오는 날의 오후 3시’(박종호·1959)가 그들이다. ‘길소뜸’과 ‘티켓’ 외에는, 한국영화사에서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아온 범작들이다.
당시 남편이었던 홍성기 감독과 콤비로 빚어낸 ‘춘향전’(1961)은 아쉬움을 넘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활력이라곤 좀처럼 맛볼 수 없는 밋밋한 연출은 말할 것 없고 나이를 고려해 스무 살의 신인(신귀식)을 몽룡 역으로, 반면 방자 역으로는 40대 중반의 김동원을 캐스팅하는 등의 영화의 패착은, 애당초 신상옥-최은희 콤비의 ‘성춘향’과의 맞대결을 불가능하게 할 만했다. 김지미가 최은희보다 무려 14살이나 젊다는 점만으로는 경쟁이 될 수 없었던 것. 같은 시기에 약 8000만환이라는 동일한 제작비와 컬러 시네마스코프 등의 비슷한 조건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성춘향’이 서울에서만 74일간 38만명을 끌어들이는 대박을 터트리면서 ‘춘향전’을 완패시켰다. 오늘날의 눈으로 판단해도, 김지미와 최은희 사이의 연기 대결 역시 김지미의 완패라 할 법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다면 김지미는 특유의 카리스마적 이미지와 발군의 미모로만 승부를 걸었던 스타-연기자였던 것일까. 전성기였다는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거의 내내, 연기상을 받지 못했다는 데서 언뜻 그렇게 비치기도 한다. 그녀는 65년 제3회 청룡영화상부터 3년 내리 인기상을 받았으면서도, 정작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것은 ‘메밀꽃 필 무렵’(이성구·1967)으로 68년 제2회 남도영화제에서의 수상이 처음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저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작품에서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러나 겸손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생명력 넘치는 스타이자 배우
‘메밀꽃 필 무렵’ 이후 그녀는 ‘너의 이름은 여자’(이형표·1969)로 제16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등에서, ‘대원군’(신상옥·1968)으로 69년 제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에서, ‘토지’(김수용·1974)로 제13회 파나마국제영화제 등에서, ‘육체의 약속’(김수용·1975)으로 제14회 대종상에서, ‘길소뜸’으로 85년 제24회 대종상에서, ‘티켓’으로 87년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잇달아 안는다.
연기상을 기준으로 말하면 김지미는 ‘겹치기’ 연기를 계속하면서도, 연기의 참맛을 서서히 알게 되고, 스타이면서도 배우로서의 길을 꾸준히 생명력 있게 걸어갔다고 총평할 수 있다. 그런 배우에게 연기를 못한다고 평할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오는 날의 오후 3시’와 ‘고개를 넘으면’에서 김지미의 연기는 ‘광채’가 난다. 영화가 클로즈업의 매체라고 할 때, 김지미는 클로즈업을 견뎌내는 흔치 않은 여배우인 것이다. 선배 최은희나 후배 문희 윤정희 장미희 전도연 김혜수 전지현 등이 그렇듯이. 정창화 감독의 ‘장희빈’(1961)에서의 김지미는 가히 발견에 값하는, 압도적 열연을 펼친다. 그 수작에서의 그녀의 연기는 거장·명장과 함께할 때 연기자도 제 몫을 100% 다 발휘하며, 더 찬란한 빛이 난다는 평범한 진실을 새삼 증거한다.
이번 원고를 준비하면서, 명색이 26년차의 영화평론가인 나는 명배우 김지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기 회고전 책자에서 김종원이 김지미를 “미모와 파격의 카리스마 톱스타의 대명사”로, 이연호가 “시대의 얼굴: 의식과 무의식의 표상”으로, 안재석이 “충무로 스타시스템의 산증인”으로 정의하고, 그녀에게 다가선 선택들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나는 이제부터 다시, 김지미를 학습할 계획이다. 김지미처럼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게….
<전찬일 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