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가난해야 하는가, 돈에 무관심해야 하는가. 문재인정부 들어 등용된 각료들의 재산 내역이 공개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서민들, 아니 중산층 의식을 갖는 나로서도 이번 생엔 만져볼 수 없는 부의 규모 때문이다. 이번 8·9개각으로 지명된 장관(급) 후보자 중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7명의 평균 재산은 38억원 정도나 된다. 진보적 가치를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배출한 문재인정부에서 부자 각료가 등장하면 놀라는 자신을 발견하곤 노동자와 농민 서민층이 지지한다고 해서 진보적 이념을 가진 사람조차 가난해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닌지 되묻게 된다.
진보주의자가 가난할 필요는 없다. 돈에 무관심할 필요도 없다. 진보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빈부격차를 줄이는 기회균등 사회를 지향한다. 진보는 이념이지 생존 여건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유학을 해 서구 사상을 습득한 거부 집안 자제 중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배출됐던 것도 그런 배경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정부 들어 청와대 민정수석이 되었고, 마침내 검찰 개혁이란 중차대한 책임을 맡고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조국 후보자에 덧씌워진 ‘강남 좌파’는 어쩌면 질투와 시기의 언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강북으로 이사 가면 진정한 좌파가 되나. 난 서민이 아니다. 일부러 서민 지역에 가서 사는 서민 코스프레(흉내내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가 인터뷰에서 밝혔던 이 항변의 진심을 믿었다. 최근 들어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제기되는 각종 의혹을 보면 그가 ‘진보 코스프레’를 한 게 아니었나 의심이 든다. 진보가 보수의 반동을 이겨내고 사회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서는 윤리적인 태도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재산이 조 후보자의 배나 되는 106억원이지만, 그가 지난해 여름 아파트 경비실에 자비로 에어컨을 설치해준 ‘에어컨 미담’의 주인공으로 밝혀진 사실은 그래서 다르게 다가온다. 조 후보자는 “국민 정서상 괴리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법적 문제는 없다”고 누차 강조했다. 형제나 부모를 둘러싼 논란은 신연좌제의 족쇄라고 보는 이도 있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딸의 ‘황제 장학금’ ‘논문 저자 등재’ 과정을 둘러싸고 ‘흙수저’들은 분노한다. 박근혜정부 최고 실세였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가 대학에서 받은 각종 특전에 빗대 ‘조유라’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조 후보자 부부의 도가 넘는 자녀 사랑은 사모펀드에도 뚜렷하다. 조 후보자의 아내(9억5000만원)와 두 자녀(각 5000만원)가 투자한 곳은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가 운용하는 블루코어밸류업1호 사모펀드다. 펀드운용액 13억 가운데 가족 투자금이 80%가량 돼 사실상 조 후보 ‘가족 맞춤형 펀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60% 고율을 적용하는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모펀드를 활용하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건 합리적 의심이다. 그렇지 않다면 공직자가 돼 주식 직접 투자를 못 한다고 굳이 일반 펀드가 아닌 그런 냄새 나는 사모펀드에 투자한 이유가 뭐란 말인가. 74억원 투자 약정액과 실제 투자액이 다른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의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 ‘가장’들이 생계를 내팽개치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지탄받은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봤다. 가장으로서 경제 감각을 갖고 상식적인 선에서 돈을 굴리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또 내년에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는 확장재정을 펴는 마당에 세금 좀 제대로 내면 어떤가. 이 정부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튼튼히 하겠다는데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교육과 인맥의 특권을 활용해 당신들의 ‘스카이캐슬’을 공고히 하는 건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다.
그의 낙마는 보수세력에 유리할 수 있다며 ‘그래도 조국’을 붙잡아야 한다는 지인도 있다. ‘문빠’에 기대는 정치는 옳지 못하다.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가 태도에서 바르지 못하면 적극적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없다. ‘이게 나라냐’며 들어선 정부다. 삶의 태도에서 윤리성이 결여되면 ‘이게 진보냐’는 손가락질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잘못한 일을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걸 기억한다.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