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땅에서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주는 출생시민권 제도의 중단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백인 지지층의 ‘반(反)이민·반(反)원정출산’ 정서를 노린 전략적인 발언으로 분석된다.
출생시민권 제도가 폐지되면 다른 나라 국민들의 원정출산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출생시민권 제도가 폐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출생시민권 제도를 행정명령으로 폐지하겠다고 주장했다가 흐지부지됐었다. 출생시민권 제도는 미국 수정헌법에 규정된 내용이라 이를 없애기 위해선 개헌을 거쳐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참전용사 단체 연설을 위해 켄터키주로 떠나기 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출생시민권 제도를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경을 넘어 우리 땅에서 아기를 낳으면 ‘축하합니다. 이 아기는 이제 미국 시민입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이 연출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솔직히 웃기는(ridiculous)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출생시민권 제도를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말을 세 번 반복했다.
하지만 미 수정헌법 14조 1항은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사람 등을 미국 시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남북전쟁 이후인 1868년 7월 헌법에 포함됐다. 흑인 노예들과 그 후손을 미국 시민으로 인정해 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미국의 대다수 법학자들은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출생시민권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수정헌법 14조의 해석이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점은 변수다. 합법적인 시민이나 이민자가 낳은 자녀에 한해 미국 시민권이 주어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헌법적 해석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반이민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안보부가 이날 어린이가 포함된 불법 이민자 가족을 기한 없이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새 규정을 발표한 것도 이런 강경 기조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기존 규정은 불법 이민 어린이를 20일 이상 구금할 수 없도록 했으나 새 규정은 그 제한을 없애버렸다. 이날 발표된 새 규정은 앞으로 60일 이내에 시행되는데 어린이 장기구금에 따른 비판과 관련단체의 법적 대응이 예상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