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출신이 결성한 ‘치스비치’, 1990년대 감성 일깨운다


 
인디 뮤지션 4명으로 구성된 걸그룹 치스비치. 이들의 프로필 사진은 1990년대 인기를 끈 걸그룹 핑클이나 S.E.S.의 분위기를 띠고 있다.치스비치 인스타그램 캡처


이달 출범한 걸그룹 치스비치가 음악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치즈 스텔라장 러비 박문치 등 인디 음악계에서 활발히 활약 중인 네 명의 싱어송라이터가 결성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가수들이 모여 새로운 그룹을 만드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 치스비치는 존재만으로도 관심을 끌 만하다. 분명 특별한 볼거리다.

음악도 흥미롭다. 데뷔 싱글 ‘서머 러브’는 요즘 나오는 걸그룹 노래들과는 사뭇 다르다. 템포도 빠르지 않고, 날카로운 전자음도 없다. 사납게, 혹은 발랄한 기운을 가득 실어 내뱉는 래핑도 나타나지 않는다.

‘서머 러브’는 느긋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지속하는 가운데 소녀 취향의 풋풋한 정서를 내보인다. S.E.S. 핑클 베이비복스 클레오 같은 1990년대 활동한 걸그룹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또한 힙합 비트로 전환되는 간주는 그 시절 걸그룹들이 중간에 분위기를 바꿔 역동적인 춤을 추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90년대 스타일을 훌륭하게 재현했다.

90년대를 곱씹는 이들은 치스비치 외에도 더 존재한다. 올해만 해도 보이밴드 베리베리(‘불러줘’), 래퍼 그리(‘벨튀’), 코미디 힙합 듀오 이짜나언짜나(‘나 때는 말이야’), R&B 가수 준(‘오늘밤은’) 등이 뉴 잭 스윙을 선보이며 과거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컨템퍼러리 R&B와 힙합을 혼합한 뉴 잭 스윙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얻은 장르다. 20년 넘게 숨죽여 지내던 뉴 잭 스윙은 미국의 브루노 마스의 ‘피네스’가 지난해 여러 나라에서 히트하면서 다시금 주목받게 됐다. 최근 UV와 터보는 터브이라는 이름으로 90년대에 유행한 유로댄스 형식의 ‘빠지러’를 발표했다. ‘빠지러’에는 터보의 95년 히트곡 ‘나 어릴 적 꿈’과 90년대 중반 댄스 열풍을 일으킨 스페인 듀오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 일부분이 들어가 있어 중년 세대는 ‘빠지러’를 더욱 친근하게 느낄 듯하다.

터브이 멤버들처럼 90년대를 경험하거나 당시 가수로서 전성기를 누린 이들이 같은 시대에 성행한 장르를 시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90년대의 인기 장르를 복원하는 활동은 오히려 젊은 뮤지션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저 시절의 문화는 낯설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새롭게 다가온다. ‘서머 러브’를 편곡한 박문치는 96년생임에도 90년대 스타일에 심취해 솔로 작품에서도 과거의 댄스 팝을 들려주는 중이다. 젊은 뮤지션들이 옛 스타일을 신선하게 여긴 것은 지난날의 인기 양식이 재생산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근래 우리 대중문화의 키워드가 된 뉴트로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촌스럽고 투박한 것이 정겨움과 희소성을 발휘해 10, 20대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상황이 오래된 음악까지 현재에 안착하게 했다. 일련의 복고 동향은 젊은 음악팬과 중년 세대의 정서적 교감을 돕는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한동윤<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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