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계 슈퍼스타’ 플라시도 도밍고(78·사진)가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이후 첫 무대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 노래를 하기 위해 무대에 서자 이미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고 AP통신 등 해외 언론이 보도했다.
도밍고는 25일(현지시간) 세계적인 음악축제 가운데 하나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콘서트오페라 ‘루이자 밀러’에 출연했다. 지난 13일 AP통신이 그가 여성 성악가와 무용가를 상대로 성추행 및 성희롱을 일삼아 왔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난 이후 처음이다. 당시 가수 8명과 무용수 1명이 도밍고의 부적절한 행위가 30년 이상 오페라극장 등에서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번 공연은 도밍고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관객 반응을 보여주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결과는 도밍고에 대한 절대적 지지였다.
공연 중 도밍고가 무대에 혼자 섰을 때 기립박수가 나왔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10분 넘는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관객 중 한 명이었던 독문학 교수 미카엘 부르가세르는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무대에 등장한 도밍고를 응원하기 위해 관객들이 기립한 것은 도밍고에 대한 지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도밍고는 “멋진 관객, 좋은 공연이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극장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팬들에게 사인도 해줬다.
AP통신의 성추행 및 성희롱 의혹 보도 직후 도밍고가 총감독을 맡고 있는 로스앤젤레스(LA) 오페라는 조사 방침을 밝혔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각각 9월과 10월로 예정된 도밍고의 콘서트를 취소했다. 하지만 유럽 지역에서는 앞다퉈 도밍고를 감싸고 나섰다.
수많은 남녀 유명 성악가들과 각국 오페라 커뮤니티는 도밍고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명했다. 이들은 SNS에서 ‘StandByDomingo’ 혹은 ‘ISupportPlacidoDomingo’란 해시태그를 달고 도밍고 지지를 선언했다.
음악계에서는 도밍고에 대한 조사나 징계가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영국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도밍고가 총감독과 예술감독을 사임하는 수순에서 마무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브레히트는 그 이유로 성추행 의혹 제기자가 모두 무명이고, 강압적인 성추행 증거가 없으며, 추가 고발자가 없다는 것을 꼽았다. 또 도밍고가 그동안의 헌신으로 음악계에서 아직 지지를 받고 있으며 오페라계도 세계 최고의 박스오피스를 자랑하는 그를 여전히 필요로 한다는 점도 이유로 지목했다.
도밍고와 비슷한 사례는 적지 않다. 스위스 출신의 지휘자 샤를 뒤투아와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는 각각 2017년과 2018년 성추행 사실이 폭로돼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들은 1년도 채 안돼 돌아와 여전히 지휘하고 있다.
이들의 도덕적 일탈이 용인되는 이유로는 ‘위대한 예술가’는 사회 관습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관념이 예술계에 뿌리깊다는 것이 꼽힌다. 클래식음악과 오페라가 스타를 필요로 한다는 점도 이유로 지목된다.
음악 칼럼니스트 노승림은 성추행 의혹에도 도밍고에 대한 오페라계 관계자들이나 팬들의 지지에 대해 “음악계의 고질적인 보수적 태도도 문제지만 도밍고라는 이름이 지닌 마케팅 가치를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오페라계 생태계와 시장이 허약하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