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9월 하순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제74차 유엔총회에 불참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31일(현지시간)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유엔총회에서 이뤄질 것으로 기대감을 모았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리용호 외무상 간의 북·미 고위급 회담도 무산될 전망이다. 북한이 유엔총회에 리 외무상을 보내지 않는 것은 미국과의 대화를 당분간 피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재무부는 지난 30일(현지시간) 정제유 제품에 대한 북한과의 불법 해상 환적에 연루된 대만인 2명과 대만 해운사 2곳, 홍콩 해운사 1곳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미국은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을 요구하면서도 북한의 제재 위반에 대해선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하고 있다. 북한이 문제 삼았던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끝났지만 특별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북·미 협상의 표류 상태는 더 길어질 전망이다.
북한은 이번 유엔총회의 일반토의 기조연설자로 대사급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당초 리 외무상이 기조연설을 할 것이라고 유엔에 알렸지만, 지난주 계획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일반토의 마지막 날인 30일 기조연설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거의 빠짐없이 유엔총회에 외무상을 파견해왔다. 북한이 리 외무상을 파견하지 않은 것은 미국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 교도통신은 분석했다. 그러나 일반토의 연설자는 회의 당일에도 바뀔 가능성이 있어서 유동적인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리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오지 않을 경우 미국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한 이른바 ‘뉴욕채널’로 북·미 물밑접촉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북·미 대화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북한과의 불법 환적에 연루된 대만인들과 해운사들에 대해 제재를 가하면서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대북 투트랙 전략을 이어갔다. 미 재무부의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대만인은 황왕컨과 그의 부인 천메이샹이다. 황왕컨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난해 4∼5월 170만ℓ의 정제유를 해상에서 선박을 통해 북한 선박 백마호에 옮겨 실은 혐의를 받고 있다. 천메이샹은 제재 대상에 오른 해운사 2곳의 이사회 멤버였거나 단독 소유주였다. 미국이 북한과 관련해 추가 제재를 발표하면서 북·미 협상 재개는 더욱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폼페이오 장관이 “우리는 북한의 불량행동이 간과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북한이 문제 삼고 나선 것도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북한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미국은 (북한의) 인내심을 더 이상 시험하려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을 “비이성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로 떠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는 최 부상 명의의 논평에도 “우리는 북한의 카운터파트로부터 답을 듣는 대로 협상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흙탕물 싸움을 피하면서 북·미 실무협상 재개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