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등급인 5등급의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안이 1일(현지시간) 미국 남동부 끝자락과 가까운 카리브해의 바하마를 덮쳤다. 도리안은 이날 낮 12시40분쯤 최고 시속 297㎞(185마일)의 강풍과 함께 인구 40만명의 작은 섬나라 바하마를 습격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피해가 발생했다. 폭풍과 물폭탄에 집과 건물은 무너졌고 자동차는 전복됐다. 전신주가 쓰러져 정전 사태가 속출했다. AP통신은 재앙적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도리안의 파괴력은 오후 2시쯤 6000명이 사는 마시 하버를 덮치고 지나갔을 때 최고점을 찍었다. 마시 하버의 주민 레이 라마티나 데이비스는 NBC방송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완전한 파괴”라고 표현했다. 데이비스는 “집이 반이라도 남은 나는 행운”이라며 “이웃집들은 전부 무너졌다”고 전했다. 국제적십자사는 바하마 전역에서 주택 1만3000여채가 파손됐다고 밝혔다.
바하마 정부는 도리안이 2만1000여 가구, 7만3000여명의 주민에게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아바코섬에서 8세 소년 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허버트 미니스 바하마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대피 요구를 거절한 주민들이 이 폭풍에서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라며 눈물을 터뜨렸다. 이어 “오늘이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최악인 날”이라며 “의사 출신으로 나는 많은 일을 견딜 것을 훈련받았지만 이런 것은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바코섬 일부 지역에서는 도로가 시작되는 지점과 바다를 분간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바하마와 가까운 미국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도리안은 미국 방향인 서쪽을 향해 이동 중이다. 미국은 플로리다주와 조지아주를 시작으로 3일부터 도리안의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예보됐다. 사우스캐롤라니아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는 5일쯤 도리안이 지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도리안은 미국 쪽으로 접근한 후 북동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어 미국의 남동부 해안을 따라 북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정부는 도리안이 미국 땅에 상륙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남동부 해안가에 폭풍과 폭우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도리안 영향권에 들어갈 플로리다·사우스캐롤라이나·노스캐롤라이나주는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2일 낮 12시부터 83만명에 이르는 해안가 주민 전원에게 대피를 지시했다. 주 경찰은 주요 해안가 고속도로를 통제해 해안으로 가는 길을 막을 방침이다. 또 플로리다주를 중심으로 600편의 항공기가 1일 결항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재난관리청(FEMA)을 방문, 브리핑을 받은 뒤 “도리안은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 중 하나”라면서 “동부 해안의 일부 지역은 매우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브리핑에는 도리안의 이동경로에 포함된 4개주의 지사도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폴란드 방문도 취소하고 도리안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플로리다주가 내년 대선의 최대 승부처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AP통신은 도리안의 파괴력이 역대 미국 땅을 강타한 허리케인 중 공동 1위라고 보도했다. 이 허리케인은 허리케인에 이름을 붙이기 전인 1935년 노동절(9월 첫 번째 월요일)에 미국을 덮쳤다. 기록된 역대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은 1980년의 앨런으로 풍속이 시속 305㎞(190마일)에 달했으나 미국 땅에 상륙하지는 않았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