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이되 압도적이지 않다… 모두를 빛나게 했던 스타

연기력과 외모, 스타 파워, 카리스마를 두루 갖춘 배우 최무룡. 여러 영화에서 그는 맑은 음성과 눈에 의한 감정 표현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그가 출연한 대표작들의 극 중 장면들.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5인의 해병’ ‘빨간 마후라’ ‘오발탄’.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93년 제31회 대종상 시상식에 아들인 배우 최민수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최무룡. 국민일보DB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을 기해 영화평론가 주유신과 한 인터뷰에서 김지미는, 연기를 가장 잘하는 남자배우로 최무룡을 꼽았다. 남편이었기에 그런 거 아니냐는 반문에 “아니. 그 이전이든 그 이후든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죠. 세상 사람들이 다 보는 얘기인데. 연기는 그분이 제일입니다”라고 단언했다. 이유인즉슨 “많은 상대를 만나봤어도 제일 편한 상대는 역시 최무룡씨라는 얘기가 여배우들 입에서 다 나오니까”라면서.

그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배우 50주년 및 국제극예술협 창립 70주년 기념 ‘푸른 별의 노래’ 공연 후 만난 권병길 선생은 내게 한국영화사 최고의 남자배우는 단연 최무룡이라고 강변했다. 그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한국영화 100년, 시대의 변천과 남성 인물의 자화상’ 10인 가운데 그가 포함돼 있지 않은 데 대한 일종의 질책성 유감 표명일 터였다.

내심 뜨끔했지만, 그 이후로도 내 선택은 변함없었다. 만약 이 연재 ‘한국영화 100년의 얼굴’이 총 25인이 아니라 20인이라면, 그래서 남우 13인 여우 12인이 아니라 각 10인이라면 그는 여기서도 제외됐을 게 틀림없다. 연기를 못해서? 외모나 스타성에서 밀려서? 카리스마가 약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최무룡 그는 한 연기자가 확보할 수 있는 최상의 위용을 뽐내다 떠난 카리스마 가득했던 톱클래스 스타-배우였다. 그는 연기력에서는 김진규에게, 외모 및 스타 파워에서는 신성일에게, 카리스마에서는 신영균에게만 다소 밀리는 정도였다. 결국 내가 최무룡을 선택하지 않은 까닭은 그 존재감의 3분의 1씩이, 부득이 경쟁하지 않을 수 없었을 세 동료들에게 나눠져 있다고 여겨왔기 때문이었다.

사생활·정치활동에 가려진 연기력

객관적으로도 또 다른 이유들이 없지는 않다. 그 일면을 포털사이트 다음의 ‘근현대 영화인사전’은 이렇게 전한다. “최무룡은 현재까지 한국영화계의 큰 별로 남아있”긴 하나 “영화보다 그의 삶이 더 조명되고 회자되고 있다”고. “그의 삶”이란 물론 김지미와의 간통·결혼·이혼 등 파란만장한 사생활이나, 가수 및 국회의원 등 영화 이외의 다채로운 활동을 가리킬 터. 270여편의 출연작 중 한국영화 100년사를 빛낸 대표작들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유현목 감독의 걸작 ‘오발탄’(1961)을 비롯해 김기덕에게 1962년 제1회 대종상 신인 감독상의 영예를 안겨준 ‘5인의 해병’(1961), 이만희의 수작인 전쟁 휴먼 드라마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신상옥의 대표적 전쟁 영화 ‘빨간 마후라’(1964), 김기덕의 휴먼 드라마 ‘남과 북’(1965) 등이다.

이들 대표작에서도 최무룡은 인상적이되 압도적이지는 않다. ‘오발탄’에서는 김진규에, ‘5인의 해병’에서는 신영균과 박노식, 후라이보이 곽규석에, ‘빨간 마후라’에서는 신영균에 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그것은 수상 내역에서도 드러난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는 장동휘 구봉서 이대엽 등과 더불어 특별상(집단연기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빨간 마후라’는 엄연히 주연이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64년 제2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이 주어졌다.

심지어 65년 제3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남과 북’에서도 신영균과 남궁원 등에 밀린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남과 북’에서 플롯을 밀어붙이는 중심인물은 최무룡이 연기한 비운의 이대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헤어진 애인을 찾기 위해 모든 걸 걸고 귀순한 인민군 장일구 소좌(신영균)나 결정적 해결사 역할을 하는 이대위의 상관 정보참모(남궁원)다. 최무룡은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에서도 주연 고종 역으로 71년 제10회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배우 최무룡의 진면모는 외려 상기 대표작들 이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근현대 영화인사전’에서는 그의 연기가 “신극이 중시하는 사실성을 바탕으로 맑은 음성과 눈에 의한 감정 표현이 특징”이었단다. 또 그의 연기 정점이 “억울하게 강도 혐의로 몰리게 된 한 전기공의 극한 상황을 정확한 해석으로 이끌어낸 ‘잃어버린 청춘’(1957)의 위진국 역”이라지만, 필름이 없어 확인할 길이 없다. 영화가 제1회 부일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유현목)을 동시에 차지한 만큼, 연기 등 그 영화적 수준이 상당했으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비록 음성 트랙이 분실돼 영상밖에 볼 순 없긴 해도, 거장 김기영 감독의 데뷔작 ‘주검의 상자’(1955)에서 이미 최무룡의 매혹은 입증된다. 한국전쟁으로 오빠를 잃은 여주인공 김정희(강효실)의 애인 조순택 역으로 분한 20대 후반 모습만으로도, 그 특유의 감정 연기를 확인하기에 모자람 없는 것. 대학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54년 이만흥 감독의 ‘탁류’로 영화계에 뛰어든 후 첫 주연작으로 일찌감치 스타덤을 예약한 셈. ‘주검의 상자’ 이후 5개월여 지나 선보인 ‘젊은 그들’은 또 어떤가. 최은희와 함께 신상옥 사단의 단골 주연으로 출연하게 된 결정적 계기 말이다.

김동인 원작의 통속 시대극에서 최무룡은 구한말 병조판서였던 민겸호(최남현)에 의해 부모를 잃은 열혈 청년 안재영으로 분해, 남장여인 이인화(최은희) 등과 더불어 민겸호 일당과 사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의 연기력은 물론 존재감이 압권이다. 최은희와 투톱이건만 최무룡 원톱의 기운이 관류한다. 그 기운은 10여년 후 그가 주연에 연출까지 맡은 ‘나운규 일생’(1966)에서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나운규 일생’ 등 16편 연출

내친김에 ‘나운규 일생’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최무룡은 연출에도 뛰어들어 ‘피어린 구월산’(1965)부터 제작까지 겸한 ‘덫’(1987)에 이르기까지 총 16편을 감독했다. 20여년에 16편이면, 요즘의 눈으로 보면 다작이다. 그러나 비평적으로든 흥행적으로든 큰 성공을 거둔 영화는 없다. 최무룡의 야심적 연출 데뷔작은 6·25 당시 실재했던 구월산 부대의 활약상에 신영균·김지미 투톱의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한 반공 전쟁영화였으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나운규라는 한국영화사의 신화적 인물 이야기라는 소재 외에도 최무룡 김지미 엄앵란 조미령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화제몰이를 했던 ‘나운규 일생’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득 찾아드는 의문. ‘나운규 일생’을 그렇고 그런 실패작으로 간주하고 넘어가야 할까. 이번에 처음 조우한 영화는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문제작으로 손색없었다. 나운규에 대한 인물 묘사나 전기적 사건들의 타당성이나 진위 여부는 자신 있게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동안 간접적으로 학습해 온 나운규에 대한 어떤 상(象)에 근접해 있다. 영화사 연구자 이순진은 “영화로 쓴 영화사 ‘나운규 일생’이야말로, 반세기 가까운 동안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영화사 서술의 특정한 관점을 재고하는 자리에서라면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작품”임을 역설한다. 이래저래 영화는 각별한 주목에 값한다. 최무룡의 연기는 특히 그렇다.

나 대신 다른 배우들을 빛나게

앞서 말했듯, 최무룡의 연기는 압도적이진 않았다. 그는 자기가 튀는 대신, 협연하는 다른 배우들을 빛나게 했다.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다. 주연이면서도 조연적 역할을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은 그래서다. 그렇다면 최무룡은 혼자만 살고, 여타 배우들을 죽이는 ‘나쁜 연기’가 아니라 자기를 절제함으로써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좋은 연기’, 달리 말해 상생·공생의 연기를 펼친 것은 아닐까. ‘나운규 일생’에서 그는 그러면서도 폭발적인 열연을 펼쳤다. 일찍이 ‘젊은 그들’에서 구현했던 것처럼. 상생의 연기를 펼치면서도 폭발적이라? 그런 배우가 우리에게 있었던가!

최무룡은 88년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인으로 거듭난다. 영화인협회 23대 위원장과 명예위원장, 한국영상자료원 2대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영화계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99년 보관문화훈장과 제36회 대종상영화제 영화발전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 이 순간 문득, 이런 의문이 밀려온다. 최무룡을 선배 김진규와 후배 신성일, 동갑내기 신영균, 세 위대한 배우들의 합체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이…. 그런 최종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할 듯하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김지미 여사가, 권병길 선생이 주저 없이 최무룡을 한국영화사에서 제일 연기를 잘하는 남자배우로 확언한 것도 그래서 아닐까 싶기도 하고.

김지미를 몰랐듯, 나는 최무룡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 중이다. 역시 그를 다시금 학습해야지, 하는 다짐을 해본다. 당장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남자배우 10인 안에 포함시키는 선택부터 해야겠다.

<전찬일 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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