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격화되는 홍콩 시위로 불안감을 느낀 홍콩 부자들이 줄줄이 영국으로 피난을 떠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4일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영국의 1등급 투자비자 신청자 중 10%를 홍콩인이 차지하며 1분기보다 홍콩인 비중이 배로 높아졌다. 이런 추세라면 3분기 영국 투자비자 신청자 중 홍콩인 비중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 비자는 최소 3년4개월 동안 거주할 권리를 부여해 ‘황금 비자(golden visas)’로 불린다.
황금 비자는 영국 기업에 200만 파운드(약 3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외국인과 그 가족에게 부여한다. 3년4개월의 거주기간이 지나면 2년 동안 연장할 수 있고, 이 기간이 경과하면 1년 뒤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중국 부동산 그룹 좌웨이의 조지 크미엘 대표는 “홍콩인들은 전례 없는 속도로 황금 비자를 낚아채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시위가 지난 6월 9일부터 본격화된 만큼 홍콩 부자들의 황금 비자 신청 붐은 홍콩 정세 불안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논란에 따른 파운드화 가치 하락이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까지 유럽 내에서 홍콩인의 투자비자 신청 국가는 포르투갈이 1위였으나 올해는 영국이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의 황금 비자는 지난해 400건 발급됐는데 중국인이 가장 많았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한 홍콩 시위대는 오는 8일 주홍콩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홍콩 인권민주 기도집회’를 열고 미 의회에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기로 했다. 미 의회에서 지난 6월 발의된 이 법안은 미국이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홍콩의 특별지위를 지속시킬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홍콩은 비자나 법 집행, 투자, 무역 등에서 미국의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
이 법안은 또 홍콩의 기본적 자유 억압 책임자에 대해 미국 비자 발급 금지 및 자산 동결, 미국 기업이나 개인과의 금융거래 금지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는 이 법안에 대해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패권 법안”이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양국 관계는 새로운 충돌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SCMP는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람 장관은 반대 시위가 거세지자 송환법 보류를 발표하고 “송환법은 죽었다”고 선언했으나 지금까지 공식 철회하지는 않았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