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베이징을 떠나 홍콩에 도착했을 때 중국 본토에는 없는 작은 자유를 실감했다. 중국에서는 구글과 페이스북뿐 아니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중국에 비판적인 서구 언론은 접속이 차단돼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명보 등 홍콩 주요 매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홍콩에서 노트북을 켜자 모든 사이트와 SNS가 막힘없이 열렸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베이징에서는 늘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해외 사이트를 검색했던 불편함이 일거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는 또 본토 어디서나 눈에 띄는 중국 공산당의 붉은색 선전문구도 보이지 않고, 지하철이나 공항 검문이 없는 것도 신선했다. 중국 체제 밖이란 것을 실감했다. 올해 초 미국에서 중국인 유학생이 미국의 깨끗한 공기를 거론하며 “민주주의와 자유는 신선한 공기처럼 싸울 가치가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하는 ‘자유의 공기’가 뭔지 느껴졌다.
홍콩 시민들이 ‘반중 시위’를 3개월 넘게 이어가는 이유도 비슷하다. 홍콩은 활기차고 자유로운 도시이자 글로벌 금융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을 빨아들이는 아시아의 금융허브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자유와 인권, 법치라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홍콩은 통제와 감시, 체포로 숨막히는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와는 딴 세상이다. 홍콩인들 대다수도 서구 민주주의 생활방식에 익숙하다.
홍콩 인구는 2018년 기준 744만8900명이다. 이 중 100만명가량은 중국 본토에서 넘어왔다. 외국인 거주자도 7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본토에서 넘어온 100만명가량을 제외하고 나머지 600만명 이상의 홍콩 시민들은 1997년 홍콩 반환이후 ‘일국양제’ 시스템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왔다. 송환법 반대 시위에 최고 200만명의 시민이 몰려나온 것은 중국식 체제에 편입되기 싫다는 이유가 크다. 홍콩 시민들은 ‘나도 중국 본토로 잡혀갈 수 있다’는 공포감을 토로한다. 중국 본토 사람들이 홍콩으로 몰려와 부동산 값을 올려놓고 좋은 일자리를 차지해 홍콩 젊은이들이 살기 힘들어졌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중국 본토인들은 홍콩인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중국 공산당 지배에서 70년간 지내온 탓이다. 중국은 공산당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나 인권보다는 사회 안정과 체제 유지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다. 중국에는 ‘법 위에 안정’이라는 말이 있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민족 갈등이나 분리 독립 요구 등 분열을 가장 두려워한다.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온갖 비난에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100만~200만명을 강제수용하고 있다. 중국은 티벳 봉기도 무력 진압했고, 천안문 민주화 시위 때도 수많은 젊은이들을 학살했다.
체제에 도전하는 세력은 가차없이 응징하는 게 중국 공산당의 룰이다. 체제 안정 차원의 국가 통제 시스템에 익숙해진 중국 본토인들이 홍콩 시위대를 이해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건지 모른다. 홍콩 시위대에 맞은 환구시보 기자와 시위대에 총을 겨눈 민머리 경찰관을 ‘영웅’ 대우하는 데서 중국인들의 인식을 볼 수 있다. 중국인들 눈에 홍콩 시위대는 날뛰는 ‘폭도’일 뿐이다.
결국 중국 본토인과 홍콩인은 서로 다른 벽을 보고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는 사이 홍콩 사회의 분열은 심각해지고 있다. 홍콩 매체에 따르면 본토 출신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홍콩에 염증을 느끼고 귀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외국인들도 동요하고 있다. 영국 의회는 홍콩인들의 해외 탈출을 돕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홍콩 반환 시 발급한 영국 여권을 가진 홍콩인이 340만명가량인데 이들이 홍콩을 떠나면 영연방 차원에서 거주지를 마련해 주자는 분위기다. 중국은 선전을 키워 홍콩의 기능을 흡수하겠다는 ‘고사작전’으로 위협하고 있다. 정국의 분기점은 오는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이란 관측이 많다. 10월로 접어들면 중국이 진짜 발톱을 드러낼 수 있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에 맞서 자유를 지켜낼 수 있을까.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