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나달(33·2위)이 남자 프로테니스(ATP) 투어 톱랭커로 올라서고 처음으로 4대 메이저대회 우승을 모두 놓친 2015년, 코트 안팎에서 나돌았던 말은 ‘단명’이었다. 빠른 발로 많이 움직이는 나달의 특성상 30대에 접어들면 전성기가 끝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당시 나달의 나이는 29세. 하지만 나달은 33세가 된 올 시즌 메이저 2승을 챙기고 ‘황제’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흔히 테니스계의 ‘빅3(페나조)’로 불리는 로저 페더러(38·3위), 나달, 노박 조코비치(32·1위)는 10여년 전인 2000년대 초·중반부터 테니스계를 평정했다. 당시 20대인 이들은 서로를 제외하곤 거의 적수가 없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현재도 빅3가 코트를 호령하고 있다. 칼로리 소모량이 많아 젊음이 무기인 테니스 종목에서 이들은 왜 무너지지 않는가.
전문가들은 우선 과학의 발달과 탁월한 경기 경험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빅3는 과학적인 훈련법과 체계적인 식이요법으로 노화를 늦추면서도 경기를 읽는 시야가 넓어 전성기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의 테니스 선수는 매일 수천 개의 공을 치는 훈련법만 반복했다. 지금은 근육 강화나 정신적 회복을 높이는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페더러는 코칭스태프부터 멘탈 닥터, 물리치료사에 라킷의 줄을 바로잡는 임무로만 수천만원대 연봉을 받는 전문가까지 고용했다. 조코비치는 식이요법에 신경을 쓰는 선수로 유명하다. 소화불량으로 인한 변수까지 고려해 글루텐(곡류의 단백질)과 유제품을 섭취하지 않고, 경기 중 미지근한 음료만 마셔 장의 부담을 줄인다.
유진선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은 10일 “빅3의 강세는 그야말로 현대 과학의 승리”라며 “근력부터 정신력까지 일정한 수치를 정하고 꾸준하게 유지하는 훈련 인프라를 갖고 있다. 20대 선수들도 이런 훈련법을 도입했지만, 오래 전부터 경험을 쌓은 이들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런 훈련법으로 30대 선수들의 노익장은 요즘 테니스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ATP가 이날 발표한 세계 랭킹을 보면, 톱100에서 30대 선수는 34명이나 된다.
테니스계에서는 빅3의 강세가 적어도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최천진 JTBC 해설위원은 “많게는 3년 뒤까지 빅3가 독주할 것이다. 30대 초중반인 조코비치와 나달은 당분간 기량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대의 반란’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9일 US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나달을 4시간51분 동안 풀세트로 괴롭히고 석패한 23세 다닐 메드베데프(4위·러시아)는 빅3에 균열을 낼 20대의 선봉장으로 평가된다. 김성배 STN스포츠 해설위원은 “20대가 경험만 쌓는다면 이르면 내년 5월 프랑스오픈을 기점으로 새로운 판세를 짤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