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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어 물 제공… 40시간 만에 기적의 구조

미국 해양경비대 대원들이 9일(현지시간) 전날 조지아주 브런즈웍항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 운반선 골든레이호 선미 쪽에서 선체에 고립된 한국인 선원들을 구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구조대원들은 선원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선체를 두드린 끝에 선박 내부에서 두드리는 반응을 확인하고 구조에 나섰다. AP연합뉴스


선체 안에 갇혀 있던 한국인 선원 4명 중 1명이 구조대원들에게 구조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둥~ 둥~ 둥~.’

미국 해안경비대(USCG) 요원들이 선박 내부의 생존 선원을 확인하기 위해 선체 곳곳을 돌며 두드리는 작업을 한 지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어느 순간 선체 내부에서 세 차례 두드리는 반응이 들려왔다. 선원들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구조대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구조대원들은 피곤도 잊고 필사의 구조작업에 나섰고 마침내 전원 구조라는 해피엔딩을 만들어냈다. 생존을 향한 두드림이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미국 해안경비대가 9일(현지시간) 미 동부 해안에서 전도됐던 현대글로비스 소속 자동차운반선 골든레이호 안에 고립됐던 한국인 선원 4명 전원을 구조했다. 바닷물에 잠긴 선체에서 들려왔던 ‘두드리는 소리’가 악몽을 기쁨으로 바꿔놓았다.

골든레이호가 전도된 것은 지난 8일 오전 1시40분쯤이었다. 해안경비대는 오전 2시쯤 골든레이호가 전복됐다는 통보를 받고 곧바로 구조작업에 들어가 승선원 24명 중 20명을 구조했다. 그러나 선체에 발생한 화재로 구조작업은 점점 어려워졌다. 한국인 선원 4명이 선체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선박 내부에 진입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사고가 발생한 지 12시간이 지난 오후 1시30분쯤 구조작업은 일시 중단됐다. 시간이 갈수록 선체는 더 많이 기울어졌고 화재, 해상의 날씨 등이 발목을 잡았다. 불길한 전망이 커져갔다.

그러다 오후 6시13분쯤 선박 안쪽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확인됐다. 기적의 시작이었다. 해안경비대 존 리드 대령은 “선체 내부에서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이것은 정말이지 구조팀에게 동기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원들이 생존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모든 게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해안경비대는 9일 오전 7시부터 헬리콥터 등 각종 장비와 인력을 보강해 현장에 투입했다. 이어 낮 12시46분쯤 트위터에서 “승무원 4명이 생존해 있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해안경비대는 먼저 3명을 구조했고 이어 이들과 떨어져 있던 마지막 선원 1명도 구조했다.

해안경비대는 오후 5시58분쯤 트위터를 통해 “구조대원들이 마지막 골든레이호 선원을 무사히 구출했다”고 낭보를 전했다.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40여시간 만이었다.

구조된 선원 4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AP통신은 “4명 모두 비교적 양호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리드 대령은 “구조된 선원들은 안도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전원 구조가 확인된 후 해안경비대는 트위터에 14초 분량의 짧은 영상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구조된 한국 선원이 구조대원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앉아 있는데 뒤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놀라운 일입니다. 내 경력상 최고의 날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 (구조대원) 여러분이 해낸 덕택입니다.”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한 해안경비대 리드 대령이 대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 것이다.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고 구조된 한국인 선원도 일어나 오른팔을 높이 들고 영어로 “감사합니다. 여러분(Thank you. guys)”이라고 화답했다.

연달아 올라온 15초 분량의 영상에는 항구에 도착한 선원이 모포를 몸에 두른 채 웃는 얼굴로 배에서 내려 잠시 하늘을 우러러보는 모습이 담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해안경비대에 감사한다.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치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트럼프 대통령과 칼 슐츠 미 해안경비대 사령관에게 서한을 보내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해안경비대의 명민한 판단과 뛰어난 구조 기술이 기적의 원동력이었다. 선원 4명은 선박 선미 쪽 프로펠러 샤프트 룸에 갇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구출된 선원은 나머지 3명과 떨어져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3인치(7.6㎝) 구멍을 3개 뚫어 일단 같이 있는 선원 3명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구출된 선원은 물과 음식을 제공받지 못했으나 연결된 환풍 시스템 덕분에 호흡이 가능했다.

이들이 갇혀 있던 공간은 섭씨 30도를 웃돌았고 습기까지 높았다. 구조작업이 길어졌더라면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던 상황이었다. 김영준 애틀랜타 총영사는 “해안경비대도 이렇게 빨리 (구조작업이) 진전되리라 추측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구조 시점을) 상당히 길게 예측했었다”고 말했다.

김 총영사는 구조된 선원들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그는 “우리가 봤을 때는 생각보다 빨리 구조됐다 싶은데, 그분(마지막 구조자)은 깜깜한 상황이 길었고, 못 견딜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고 소개했다.

리드 대령은 사고 원인과 관련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우리는 계속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영사는 사고 당시 일본 선박이 근접했다는 보도에 대해 “당국 조사를 기다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현대글로비스는 사고 원인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미 구조 당국과 우리 외교부 당국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데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이형민 임세정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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