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달 하순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 의사를 전격적으로 밝히면서 북핵 협상에 중대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커졌다. 양측이 이미 서로 원하는 조건을 다 드러낸 상황이라 이번 대화 제의가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 9일 밤 ‘9월 하순 실무협상 재개’를 제안하자 4시간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것은 흥미로울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이에 따라 이달 말 북·미 협상팀이 마주앉는 자리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실무협상이 재개된다면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핵 협상이 다시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
실무협상 장소로는 평양과 판문점, 미국 워싱턴이나 뉴욕, 제3국이 거론된다. 평양에서 열린다면 협상에 더 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미국 협상팀을 ‘안방’으로 불러들인다면 북한 나름의 ‘확정된 카드’를 내밀겠다는 것이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결단이 협상에 즉각 반영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북했을 때 영변 핵시설 폐기를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바 있다.
실무협상이 순조롭게 열린다면 이달 말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 고위급 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북한은 이번 유엔총회에 리용호 외무상이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유엔 측에 통보했지만 북·미 대화가 급물살을 탈 경우 리 외무상이 뉴욕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북한이 실무회담 후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바닥부터 정리하는 식의 상향식 협상을 좋아하지 않는 북한 스타일을 감안하면 실무협상은 최대한 짧게 끝내고 다시 ‘톱다운 담판’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북한이 요구하는 ‘새로운 계산법’을 미국이 내놓을지 여부다. 최 제1부상은 전날 발표한 담화문에서 “미국이 우리가 접수 가능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 믿고 싶다”면서도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리면 조·미(북·미) 사이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가 외견상 각자의 입장이 달라졌다는 모습은 아직 없다. 미국은 비핵화 최종 상태를 논의하고 핵 폐기 전체 로드맵을 그리는 포괄적 합의를 원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진입로로 삼아 단계적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에 변함이 없어 보인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9월 하순까지 미국이 변화된 태도를 보이는지 지켜볼 것”이라며 “협상 결과를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미 양측은 비핵화 방식에 대한 접점을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북한이 예고 없이 실무협상 재개를 제안한 진의도 파악 중이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비건 대표는 10일 오전 전화 협의를 했다. 북·미 실무협상 개최 시기와 장소, 협상 의제 등에 대한 논의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본부장은 다음 주 미국에서 비건 대표와 만나는 출장 일정을 검토하고 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