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에서 경계 위의 음악가는 늘 찾아볼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무너진 장벽 위에서 바흐 모음곡을 연주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중에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출신의 청년 음악가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가장 최근에는 요요마가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바흐를 연주하며 트럼프의 난민정책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이 잦아지면서 음악인들의 이목은 한반도 분단의 경계선, DMZ로 집중되고 있다.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에 있는 비무장지대에 평화를 호소하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이곳에서 속속 개최되고 있다. 유명 음악가들의 순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 첼리스트 요요마는 이곳에서 국악인 안숙선, 김덕수와 함께 아리랑을 연주했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한 연천DMZ국제음악제에서는 바로 오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특별 연주회를 갖는다.
한반도에 관심을 가지는 여러 음악가들 가운데에서도 그리스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존재는 특히 두드러진다. 남북정상의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펼쳐지는 ‘Let’s DMZ’ 행사의 일환으로 오는 22일 경기도 북부청사 앞 평화광장에서 펼쳐질 ‘피스 메이커 콘서트’에서는 테오도라키스의 교향곡 3번이 한국 초연된다. 작곡가 본인이 직접 DMZ를 방문하고 싶어 했지만 최근 받은 심장 수술과 94세의 연로한 나이로 인해 영상 메시지만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은 낯설지 모르지만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 그는 우리나라에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앤서니 퍼킨스 주연의 영화 ‘페드라’ 사운드트랙을 작곡한 인물이다. 앤서니 퀸 주연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영화음악도 담당했다. 무엇보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아련한 선율은 누구든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유명하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테오도라키스의 존재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정치적 이력 때문이다. 그는 1960년대 그리스 반군부독재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투옥당했으며 그의 음악들은 모두 금지곡이 되었다. 사회주의자에다 군부독재 반대자라는 낙인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푸대접을 받았다. 5공 시절 그의 LP음반은 그의 이름이 삭제된 채 판매됐으며, TV 방송에서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가 음악이 삭제된 채 방영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작곡된 지 38년 만에 한국 초연되는 그의 교향곡 3번은 ‘그리스의 노래’라는 부제를 가진 합창곡이다.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그리스 민중의 노래를 테오도라키스는 이번에 한국에 헌정하겠노라 전해 왔다. 분쟁의 역사가 남긴,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공백에 예술이 먼저 들어가 가득 채우고 있다. 예술을 ‘평화를 위한 마중물’이라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숙명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