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아내의 쓸모



언론의 단골 메뉴였던 명절 스트레스 기획기사가 이번 추석엔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추석 연휴 금기어’가 된 ‘조국 사태’의 파장 탓이 있겠다. 차례 문화가 간편화, 간소화되고 있어 뉴스 가치가 떨어진 이유도 크다. 한국 여성들이 명절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는 추세다. 우리 집도 추석을 펜션에서 보낸 게 두 해째다. 허리가 뻐근하도록 지글지글 전 부치던 아내의 쓸모는 줄었다. 가부장제의 힘은 약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조국 사태를 들여다보면 가부장제는 때려도 때려도 고개를 내미는 두더지게임의 두더지처럼 매복해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가정에서 어느 날 일어났을 법한 저녁 시간을 상상해봤다. 딸이 재수 끝에 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가졌을 온 가족의 행복한 저녁 식사 풍경 말이다. 가장 먼저 당사자인 딸에게 축하의 말이 오갔을 것이다. ‘고교생의 1저자 논문’ ‘대학 총장 표창장’ ‘우간다·몽골 해외 봉사’ 등 필기 없이 대학과 대학원에 입학하는데 필수적이었을 스펙 쌓기 과정이 무용담처럼 오가며 파안대소하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스펙 만들기 일등공신 아내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을 것이다.

단언컨대, ‘조국 캐슬’의 매니저인 아내 정경심 교수의 전략적 접근이 없었다면 딸의 의전원 입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교수 카르텔’ ‘스펙 품앗이’ 덕분이라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문과는 문과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경로를 벗어나 외고 출신을 의사로 만드는 건 ‘내 자식만의 사다리’를 새로 놓는 일이다. 뜨거운 모정만으론 불충분하다. 지략이 수반돼야 한다.

그래선지 그의 재테크 실력은 비상하다. 남편이 공직자가 돼 개별 주식에 투자할 수 없을 때 문재인 대통령처럼 공모 펀드에 가입하는 게 상식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남편도 잘 모른다는 사모펀드, 그것도 ‘가족용’으로 의심되는 사모펀드를 생각해냈다. 사모펀드는 이제 국민 상식이 됐다. 이 모든 걸 전업주부도 아닌 직장여성이 해냈다. 슈퍼우먼을 넘어 울트라슈퍼우먼이다.

검찰 수사로 울트라슈퍼우먼 신화는 금 가고 있다. 딸 논문과 장학금 등 입시 의혹, 사모펀드 투자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아내에 대한 검찰 소환이 초읽기 수순에 들어갔다.

그런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분리·배제됐다. 조 장관은 장관 청문회 때 “동양대 총장상 위조가 사실이라면 아내가 법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내는 아내, 남편은 남편’이라는 이분법이다. 형법에선 부부라도 아내의 행위에 남편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있다면 도의적 책임 정도다. 그런데 한 가정 안에서 이뤄진 입시이며, 재테크다. 결과적으로 가문의 부와 영광으로 이어질 수혜는 남편도 입으면서 책임은 아내만 지게 하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 분리가 가당한 일인가. 문 대통령까지 나서 “의혹만으로 임명 안 하면 나쁜 선례가 된다”며 엄호한 부부유별(夫婦有別)의 이분법에는 ‘국가적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남자, 가족의 가치를 위해 희생하는 여자 식’의 가부장적 논리가 깔려 있다. 이는 곧 조 장관이 대표하는 ‘586세대’ 운동권 남자들이 가졌던 논리였다.

검찰은 조 장관의 공직자윤리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이 실질적 책임 공유 관계인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만약에 말이다. 조 장관이 민정수석에 머물렀다면 그 아내는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 남편들의 우상이 되지 않았을까. 각종 학생부 종합전형 스펙 및 ‘편법 증여’ 노하우 등이 공개되며 아내의 쓸모라곤 가사와 육아밖에 몰랐던 남자들에게 새로운 쓸모를 보여줘서다.

장관은 꿈도 못 꾸는 남편들이라면 조국 사태를 두고 술자리에선 갑론을박하면서도 현관문을 닫은 뒤에는 돈도 벌면서 자녀 대입과 노후대책, 상속문제까지 말끔히 해결하는 울트라슈퍼우먼 아내를 욕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슈퍼우먼은 페미니즘의 적이다. 남성의 신화에선 자기희생적 여성이 이상화·우상화된다. 아내의 쓸모는 자기희생의 동의어다. 울트라슈퍼우먼을 강요하는 토양은 법과 제도의 허점이다. 편법과 불법의 틈새로 슈퍼우먼에 기생하고픈 남편들의 욕망은 자란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는 페미니즘을 위해서 필요하다.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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