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데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새로운 방법’에 대한 북한의 기대감이 너무 컸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경우 북·미 대화가 다시 시작된다는 데 방점을 찍어 북한이 원하는 큰 선물을 첫 만남에 꺼내지 않은 것 같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한은 처음부터 성과를 내려 했고, 미국은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속도에 대한 시각차와 미국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대한 눈높이 차이가 협상 결렬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스톡홀름 노딜 이후 북·미 대화는 중대 고비를 맞게 됐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북·미 대화를 거부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각에서 제기되기 때문이다. 물론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북한의 전매특허라 북·미 대화가 냉각기를 거쳐 재개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8시간 반 동안 진행됐던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뒤 북·미는 입씨름을 벌였다. 북측이 언급한 ‘빈 손’과 미국이 주장한 ‘창의적인 아이디어’ 사이엔 간극이 크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의 제니 타운 편집장은 로이터통신에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질로 미국이 초기 단계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라는 북한의 기대감이 지나치게 높았다”고 지적했다.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트위터에 “미국이 빈 손으로 나타났거나, 북한이 실수 또는 의도적으로 불합리한 기대를 갖고 나타났거나 둘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창의적인 제안’을 내놨다고 언급한 만큼 미국 대표단이 무언가 제안을 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결국 미국이 내놓은 카드가 북한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얘기인 셈이다.
북한이 가시적인 조치 없이 제재 완화·해제를 요구했고 미국이 이를 거부하면서 협상이 결렬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번 협상에 북측 대표로 나선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협상 결렬 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재개까지 시사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미 국익연구소(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한국 담당 국장은 “이 시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다음 행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추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고강도 도발에 나선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유화적 스탠스를 버리고 강경 노선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핵실험과 ICBM 발사를 중단했다”는 것을 치적처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핵실험·ICBM 발사 재개는 모욕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 대화가 진통을 겪겠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재개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이번 결렬은 협상에서 뛰쳐나와 미국의 적대 정책을 비난하는 북한의 통상적인 각본일 수 있다”면서 “김 위원장이 협상팀에 테이블로 돌아가라고 지시하고, 몇 차례 더 협상을 가져서 미국 측에 성의를 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