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가 중국계 은행과 친중국 성향 상점을 공격하는 등 격한 반중국 성향을 드러내면서 홍콩에 사는 중국 본토 출신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8일 보도했다.
2009년 중국 광둥성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메리(35)씨는 최근 친구와 중국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話·만다린)로 얘기하다 봉변을 당했다. 지나가던 젊은 남자가 욕설을 하면서 “중국 본토로 돌아가라”고 고함을 지른 것. 그는 “충격을 받아 집으로 가면서 울었다”며 “10년간 홍콩에 살면서 만다린을 쓴다고 해서 협박을 받는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후 2017년까지 150만명의 중국 본토인이 홍콩으로 이주했다. 본토인들이 늘어나면서 홍콩 집값이 치솟고 일자리 경쟁도 치열해지자 본토 출신에 대한 홍콩인들의 감정이 악화됐고, 최근 송환법 반대 시위를 거치면서 증오로 바뀌고 있다.
대학 연구조교인 장모씨는 지난 7월 대학 총장을 비판하는 포스터를 떼냈다가 학생들로부터 “본토의 개”라는 욕설을 들었고 이후 그의 휴대전화에는 욕설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지난달 공개 포럼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두둔했던 한 여성은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이 페이스북에 공개되기도 했다.
중국 허베이성 출신의 캐럴씨는 “영국에서 살다 아이가 중국적인 환경을 원해 2016년 홍콩으로 이주했다”며 “하지만 요즘 아이에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오직 영어로만 얘기하라고 주의를 준다”고 말했다. 안후이성 출신으로 2009년 홍콩 영주권을 받은 겅모씨는 “홍콩은 100년 이상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식민통치기간 영국인처럼 행동할수록 더 존경을 받았다”며 “홍콩인들이 본토 출신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람 장관은 이날 “상황 악화 시 모든 옵션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인민해방군이나 중국 중앙정부의 홍콩 사태 개입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람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나는 우리가 사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중앙정부도 이러한 입장”이라며 “하지만 상황이 매우 악화할 경우 어떠한 옵션도 배제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