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람(사진) 건국대학교병원 비뇨기의학과 교수는 ‘연구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의사가 됐다. 생명과학 분야를 전공한 그가 미국 하버드 대학병원의 실험실에 있을 당시 우연히 만난 의사과학자의 영향이 컸다. 의사와 과학자가 만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본 그는 한국에 돌아와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 이후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거치고 박사과정을 밟아 현재 건국대병원에서 연구와 진료를 동시에 하고 있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 그의 연구 성과가 권위 있는 학술지에 잇따라 게재되면서 김 교수는 영국 비뇨기과학회지(BJU International)가 새롭게 만든 저널 ‘BJIU Compass’의 편집자(Consulting Editor)로 초빙돼 10월부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 교수가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연구는 비뇨기질환 중에서도 ‘난치성 여성 질환’이다. 의료기술 개발로 다양한 질환의 치료성공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일부 여성 질환의 경우 재발이 잦고 심각한 통증을 동반해 삶의 질 저하도 야기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치료법을 찾는 것은 김 교수가 연구 주제를 설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김아람 교수는 “보통 비뇨기질환이라고 하면 남성 질환을 떠올리기 쉬운데, 실제 진료현장에서 만나는 환자의 60~70%는 여성이고 연령층도 20~90대까지 다양하다”며 “특히 많은 여성이 겪는 비뇨기질환은 잦은 재발, 극심한 통증, 불편감 등의 증상으로 인해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요즘은 치료에 있어 ‘삶의 질’ 부분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비유를 하자면, 환자가 강물에 떠내려 오면 의사는 그들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 환자들이 왜 떠내려 왔는지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만드는 사람이 필요한데, 특이하게도 상류에서 하는 연구는 의사만 할 수 있다. 법적, 윤리적 이유로 과학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며 “의사의 연구는 학문적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임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외과의사로 살면서 연구하는 이상적인 그림은 미국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한국의 현실은 전공의, 펠로우 과정을 거치며 환자를 많이 보고 논문을 쓰는 등 ‘실적’을 쌓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최근 병원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연구 성과가 단기간에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하는 의사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젊은 교수들이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복압성 요실금 환자 대상 ‘TVT’ 수술법 효과 입증, 국제학술지 게재=김아람 교수는 김형곤(건국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와 함께 ‘복압성 요실금 수술법(TVT)’의 우수성을 확인한 연구를 세계적 권위 저널 Journal of Urology와 BJU International에 연속해 게재했다.
복압성 요실금은 기침, 재채기, 점프, 걷기, 뛰기 등의 신체적 활동으로 인해 복압이 상승할 시 소변을 지리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소변 지림은 방광목 근육의 지탱 강도가 약해지면서 생기는 것인데, 방광 출구를 막고 있는 밸브가 완벽하게 닫히지 않아 복압이 높아지면 지림 현상이 나타난다.
요도의 괄약근이 약해진 것을 원인으로 보고 치료는 요도를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테이프를 삽입해 지탱해주는 ‘중부요도 테이프 거치술(midurethral sling)을 시행한다. 이 수술법은 크게 ‘긴장완화질강 테이프수술(TVT)’과 ‘경폐쇄공 중부요도슬링 (TOT)’으로 나뉜다. TVT 수술이 원조 치료법이지만 국내에서는 대부분 TOT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TVT 수술의 경우 테이프가 더 타이트하게 요도를 받치는 대신 수술 도구가 방광 및 장을 스칠 수 있어 손상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의 보고에 따르면, 두 수술법의 효과의 차이가 없어 위험 부담이 낮은 TOT가 많이 시행됐다.
그러나 건국대병원 연구팀은 환자 맞춤형 수술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는 의미가 없다고 봤다. 요도를 감싸는 각도가 더 예리한 TVT가 고위험군 환자에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 요실금 수술 후 재발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 환자만을 대상으로 두 수술법의 장기 성적을 메타분석으로 비교했다. 고위험군은 비만환자, 수술 실패 환자, 방광류 처짐이 있는 환자 등이다.
그 결과,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두 치료법을 비교했을 때 치료성공률 차이는 2~3%에 그쳤지만, 고위험군에서는 17%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수술법 중 특정군에서의 TVT 효과를 입증한 것이다.
김아람 교수는 “여성에게 복압성 요실금은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는 질환이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15~20% 여성이 이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약물로는 치료가 되지 않아 수술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러나 수술 효과가 평생 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0년 전 요실금 수술을 많이 받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치료를 받은 환자 중 재발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100세 이상까지 사는 시대에서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수술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고 연구 의의를 밝혔다.
◇치료법 없는 방광질환, ‘줄기세포’ 이용해 약물 개발=최근에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방광통증증후군·간질성방광염 및 재발성방광염 치료법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심각한 방광통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다. 특히 소변이 차면 방광에 통증이 생기는 질환이라서, 환자는 본능적으로 방광을 비우게 되어 하루에 20회 가까이 배뇨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치료법이 없어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호소한다.
재발성방광염 역시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 김 교수는 “급성 방광염을 한 번이라도 앓아본 여성은 그 통증을 평생 잊지 못한다. 추운 겨울밤에 응급실을 찾을 정도면 얼마나 아픈지 짐작할 수 있다”며 “그런데 그 통증이 1년에도 수차례씩 나타난다. 항생제를 복용하면 호전되지만,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항생제를 복용하니 내성 문제도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통증의 원인은 방광의 내벽에 있는 보호막에 이상이 생겨서이다. 방광의 내벽이 완벽하게 코팅되어 있지 않아 소변 내 전해질이 벽을 파고들면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라며 “방광 속 궤양이 생긴 부분을 절제해도 1년 안에 50% 이상이 재발하기 때문에 10번 넘게 수술을 받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아예 방광을 절제하고 소장으로 방광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 방광대치술을 할 수 있다. 방광암 치료시 시행되는 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부담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방광 내벽의 방어벽 기능을 복구하는 연구로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입증, 2017년 대한비뇨기과학회 학술상 기초부문 우수상, 2018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더 나아가 이 질환의 병태 생리를 연구하고, 줄기세포 엑소좀(exosome)을 이용한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현재 건국대학교 줄기세포학교실의 조쌍구 교수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이 연구가 지난 7월 국책과제에 선정되면서 18억의 연구비를 수주했고, 학회에서 수여 하는 젊은 비뇨의학자 연구지원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엑소좀은 세포 내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세포 유래 소포이다. 쉽게 말해, 세포가 아닌 엑소좀에 유전정보가 담겨 있어 줄기세포의 장점을 이용할 수 있고 세포 삽입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부담은 줄일 수 있다.
그는 “줄기세포 치료를 실제 인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모든 약은 성분과 함량이 정해져 있지만, 줄기세포는 그걸 정하기 어렵다. 또 암과 같은 부작용 위험도 있다”며 “줄기세포와 달리 엑소좀은 부작용 위험을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실제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외에도 방광암을 소변으로 진단하는 기술 개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많은 기술적 한계나 어려움이 있지만 기초 연구자, 다른 분야 전문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유수인 쿠키뉴스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