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래퍼 ‘염따’는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이 제작한 티셔츠와 슬리퍼 등을 판매했다. 제품 판매 방법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상품을 등록한 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판매 사실을 알렸을 뿐이다.
그런데 염따는 3일 만에 매출 21억원을 올렸다. 유튜브 공간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의 영향력이 발휘된 사례였다.
염따의 팬들은 평소 유튜브 공간에서 염따를 향해 ‘티셔츠나 파십쇼’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건넨다. 이는 그와 팬들의 놀이문화의 일종이다. 염따 티셔츠의 폭발적인 인기도 이 놀이문화의 덕을 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염따가 동료 가수의 고가 외제차를 실수로 들이받은 후 수리비를 벌기 위해 굿즈를 판매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재미를 더했다. 그가 평소 카드 대신 굳이 현찰 뭉치를 들고 다니고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비싼 외제차를 모는 등 ‘밉지 않은 허세’를 정체성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온라인마켓이 발달하면서 온라인상에서 영향력이 강한 개인이 상행위에 미치는 영향력도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세포마켓’(cell market)을 올해를 이끌 10대 키워드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는 세분화된 세포 단위의 시장이 만들어진다는 의미에서 착안한 용어로 염따도 세포마켓인 셈이다.
세포마켓 영업 공간을 제공하는 플랫폼 업체와 배송·상품 기획 등을 지원하는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1인 마켓은 여러 명이 톱니바퀴처럼 일하는 기업에 비교해 업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배송 문제다. 염따는 티셔츠 판매가 폭등하자 “배송에 몇 년은 걸리겠다. 그만 사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3PL 물류 업체 두손컴퍼니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크라우드펀딩·인플루언서 전문 물류 서비스 ‘두윙’을 시작했다. 두윙은 일회성으로 만든 기획 상품이나 소규모 벤처기업의 배송을 담당한다. 하루 배송 물량 10건 이하의 초기기업과도 거래한다. 두윙은 이미 네이버 해피빈의 크라우드펀딩 물량을 맡고 있다. 오는 11월부터는 국내 대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와디즈’와도 마케팅 프로모션 등으로 협업한다.
크라우드펀딩은 사업 아이템은 있지만 자금과 실행력이 없는 개인 혹은 업체가 풀뿌리 투자를 받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펀딩이 완료된 후에도 물품 조달과 배송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 단점도 있다. 그러다 보니 펀딩을 주도하는 1인 마켓들 중에는 갑작스런 주문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고생한 후 사업을 그만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유아용천연입욕제 브랜드 ‘나띵프로젝트’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나띵프로젝트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사업의 기틀을 다졌다. 하지만 박진아, 최혜원 대표 두 사람이 상품 기획과 판매는 물론 배송까지 책임져야 했다. 특히 배송 업무가 전체 업무의 80%를 차지할 만큼 많았다. 하지만 두윙이 상품 입고와 배송을 담당하며 고민이 해결됐다. 나띵로젝트는 두윙 이용 후 매출이 3배 올랐다.
두윙을 운영하는 ‘두손컴퍼니’는 이커머스 전문 풀필먼트 업체 ‘품고’도 운영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세포마켓이나 온라인업체들이 상품 관련 물건을 제때 주문 보관하고 완제품을 배송하도록 돕는다. 이 밖에 재고관리, 상품 배송까지 책임진다. 나띵프로젝트는 두윙 서비스를 이용해 사업을 안정시킨 후 품고 서비스로 넘어갔다.
세포마켓을 둘러싼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영향력이 막강한 인플루언서 영입 경쟁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은 최근 미디어 크리에이터들의 펀딩이 이어지는 것에 주목했다. 고양이 관련 영상으로 유튜브에서 약 30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크림히어로즈는 영상에 등장하는 고양이 인형이나 우산, 쿠션 등 캐릭터 제품으로 총 10번이 넘는 펀딩 프로젝트를 열어 총 약 6만2000명의 후원자를 확보했다. 게임 유튜버로 유명한 대도서관도 자신의 캐릭터를 본딴 굿즈로 목표 금액의 1138% 초과 달성했다. 업계는 이처럼 인플루언서들이 주도하는 이벤트나 공동구매, 크라우드 펀딩 등이 앞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와 함께 일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배송물량이 수만건씩 좌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인 마켓 개설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업계 경쟁도 치열하다. NHN의 자회사 NHN 고도는 지난 3월 1인 마켓 ‘샵바이’를 론칭했다. 샵바이는 인플루언서 1인 마켓이나 신규 창업 소상공인에게 최적화된 쇼핑몰을 표방했다. 간단한 가입절차만 거치면 별도의 가입비나 운영비 지출 없이 쇼핑몰을 바로 개설할 수 있다. 쇼핑몰 메뉴와 UI(사용자환경)를 대폭 간소화시켜 단순하고 쉽게 쇼핑몰을 만들어 운영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쇼핑몰 디자인 편집도 드래그&드랍 방식으로 간소화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 1만3000명을 확보한 윤서은씨가 대표로 있는 의류업체 피워도 샵바이에 둥지를 틀었다.
기존 업체와의 차별점도 확실하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는 검색엔진, 네이버쇼핑과의 연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샵바이는 독립된 쇼핑몰을 제공한다. PG수수료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용도 받지 않는다. 기존 플랫폼에 귀속되지 않고 자체 쇼핑몰을 운영하려는 인플루언서들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샵바이는 차별화된 서비스로 4개월 만에 1만 곳이 넘는 온라인 상점을 유치했다.
2003년 쇼핑몰 시장에 진출한 ‘카페24’도 최근 ‘스마트모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역시 인플루언서 등 1인 창업자를 겨냥한 서비스다. 스마트모드는 20여 가지 핵심 기능만으로 상품 관리에서부터 결제·배송·프로모션까지 한번에 운영할 수 있다. 카페24 스마트모드 역시 지난 8월 기준 1만곳 넘는 업체가 참여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