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옷 ‘아바야’를 입고, 머리에는 두건의 일종인 ‘히잡’까지 둘렀지만 스타를 향한 젊은 여성 관객들의 마음은 지구촌 또래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슬람 국가여서 공공장소에서 여성이 춤을 추는 건 금기에 가까웠지만, 공연장에 모인 이들은 콘서트 내내 어깨를 들썩이며 스타의 이름을 연호했고 한국어로 ‘떼창’을 이어갔다.
이렇듯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 곳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 위치한 킹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이었다. 이곳에서는 지난 11일 오후 7시30분(현지시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가 열렸는데, 해외 가수가 이 나라에서 스타디움 공연을 개최한 건 처음이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3만 관객은 여타 국가의 BTS 팬들이 그렇듯 응원봉 ‘아미밤’을 흔들며 콘서트를 즐겼다. 스마트폰 플래시를 일제히 켜는 이벤트에 동참하거나, ‘파도타기’를 시도해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BTS는 ‘디오니소스’를 시작으로 ‘낫 투데이’ ‘작은 것들을 위한 시’ ‘페이크 러브’ ‘마이크 드롭’ 등 24곡을 3시간 가까이 열창했다. 멤버들은 30도를 웃도는 날씨 탓에 비 오듯 땀을 흘려야 했지만 중동의 팬들 앞에서 그야말로 혼신의 무대를 선보였다.
팀의 리더인 RM은 “여러분이 먼 곳에 있는 저희에게 주는 사랑이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오늘은 오랫동안 BTS를 기다려온 아미들을 위한 축제”라고 말했다. 앙코르 무대에서는 생일(13일)을 앞둔 멤버 지민을 위해 팬들이 아랍어로 축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슈가는 “사우디는 처음인데 깜짝 놀랐다. 다시 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뷔는 “다음에 또 여기 꼭 오고 싶다”고 말했다.
콘서트를 마친 BTS는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믿기지 않는 순간을 만들어준 아미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날 공연은 네이버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BTS는 오는 26, 27, 29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지난해 8월부터 시작한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의 대미를 장식하는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