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군이 국제사회의 우려와 제재 압박을 무시하고 시리아 국경을 넘어 파죽지세로 진군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와 장기간 전쟁을 벌이며 단련된 쿠르드군이지만 첨단무기를 앞세운 터키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친(親)터키 반군이 쿠르드족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제사회는 터키의 진격을 막기 위해 강력한 경제 제재를 내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터키 국방부는 12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2013년부터 쿠르드족이 통제해온 쿠르드족 요충지 라스알아인을 점령했다고 밝혔다. 라스알아인은 터키·시리아 접경지역의 중심 도시다. 쿠르드 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터키군이 라스알아인 중심부를 장악했다고 밝혔다. 터키군과 그들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은 이튿날 락까주 술루크 지역도 대부분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쿠르드 측 시리아민주군(SDF) 병력 76명이 터키군과의 교전에서 전사했다. 친터키 반군 측에서는 13명이 숨졌고 터키군에서도 전사자가 8명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친터키 반군이 쿠르드족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SDF에 따르면 친터키 반군인 시리아국가군(SNA)이 시리아 북부 국경도시 만비즈와 까미슐리를 연결하는 M4 고속도로에서 민간인 9명을 처형했다. 피살자 중에는 여성 정치 지도자 헤르빈 카라프 시리아미래당 사무총장도 포함돼 있었다고 SDF는 밝혔다. SNA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터키군이 진격 도중 미군 특수부대 기지 인근에 포격을 가한 사건을 두고도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터키군은 즉각 미군을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터키 측이 미군을 작전지역 바깥으로 몰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력시위를 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터키에 대한 제재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 스웨덴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대(對)터키 무기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유럽 정상들은 오는 17~18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터키 제재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미 트럼프 행정부도 강력한 경제 제재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연말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방침에 반발해 사임했던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미군 철수 결정이 해당 지역의 혼란을 부추기고 IS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매티스 전 장관은 미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IS가 (해당 지역에서) 재창궐하지 않도록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복귀는 완전히 기정사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침묵의 의무’가 있다며 직접적인 비판은 삼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철수 결정이 잘못된 신호를 줘 대(對)IS 통제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실제 IS 잔당들의 활동도 본격화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쿠르드족이 포로로 붙잡고 있던 IS 전투원의 가족 등 785명이 터키의 공습을 틈타 시리아 북부 아인이사 수용소에서 집단 탈출했다고 전했다. 해당 지역 7개 IS 포로 수용소에서 1만2000여명의 IS 전투원을 포함해 총 10만여명의 IS 부역자를 관리하고 있는 SDF는 포로 관리보다 주민 보호를 우선시하겠다고 선언해 수용소 폭동 및 집단 탈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조성은 이형민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