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어벤져스’로 통하는 그룹 슈퍼엠이 미국 데뷔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정상에 등극했다.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을 잇는 한국 대중음악의 또 다른 쾌거다. 일각에서는 K팝이 세계 주류 음악 시장에 확실히 자리매김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빌보드는 13일(이하 현지시간) 슈퍼엠의 첫 미니음반 ‘슈퍼엠’이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음반 판매량 집계 회사인 닐슨뮤직에 따르면 지난 4일 출시된 슈퍼엠의 앨범은 10일까지 16만4000장이 팔렸고, 음원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점수를 더해 16만8000점을 획득했다(빌보드는 음원 10곡을 내려받거나 1500곡을 스트리밍하면 음반 1장을 산 것과 같은 점수를 준다).
슈퍼엠은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미국 시장을 겨냥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태민(샤이니), 백현과 카이(이상 엑소), 태용과 마크(이상 NCT 127), 루카스와 텐(이상 웨이션브이)으로 구성됐다. 소속 그룹에서 뛰어난 춤 실력으로 주목받는 이들을 모아 ‘드림팀’을 만든 셈이다. 멤버들은 모두 20대지만, 활동 연차를 합하면 25년이나 된다. 멤버들은 “빌보드에서 1위를 하게 돼 정말 기쁘고 꿈만 같다”고 전했다.
슈퍼엠의 시작은 미국의 유명 레이블인 캐피톨뮤직그룹(CMG)의 제안이었다. SM은 소속 그룹 NCT 127의 미국 진출을 위한 파트너로 지난해 CMG와 인연을 맺었는데, 이 회사로부터 ‘K팝 어벤져스’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다. 스티브 바넷 CMG 회장은 빌보드 1위 소식이 전해진 뒤 “슈퍼엠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 대중음악이 빌보드 정상에 처음 등극한 건 BTS를 통해서였다. BTS의 정규 3집은 2018년 5월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후속작들도 각각 같은 해 9월과 올해 4월 이 차트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BTS 신드롬’을 K팝의 인기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BTS와 견줬을 때 여타 K팝 그룹의 성과가 미진했기 때문이다. BTS를 잇는 대형 K팝 그룹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그러나 슈퍼엠이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면서 K팝이 세계 음악 시장 주류 장르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규탁 한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싸이를 시작으로 2010년대 초반부터 많은 가수가 닦아놓은 길을 이제 후발 주자들이 내달리기 시작했다”며 “슈퍼엠의 성공은 음악 시장에서 K팝의 ‘네임 밸류’가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슈퍼엠의 성공 요인으로 SM의 치밀한 기획력을 꼽는 목소리도 많다. 슈퍼엠의 음악 색깔은 이른바 SMP(‘SM 뮤직 퍼포먼스’의 준말)로 요약할 수 있다. SMP는 웅장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데, SM 소속 뮤지션들은 이런 음악에 격렬한 퍼포먼스를 보태 인상적인 무대를 연출해내곤 했다. 슈퍼엠 역시 마찬가지다. 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인 미묘는 “슈퍼엠은 SMP의 매력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 팀”이라며 “슈퍼엠은 BTS 외에도 K팝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SM의 전략적인 노림수가 적중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슈퍼엠 음반은 현재 해외 구매를 통해 구입할 수 있는데, 이런 식의 방법을 통해 국내 팬덤도 빌보드 차트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예스24를 비롯해 국내 사이트에서 슈퍼엠 음반을 사려면 ‘해외 구매’ 방식으로 구입할 수 있다. 앨범 제목 옆에는 ‘미국 빌보드 집계 반영 CD’라는 문구도 붙어 있다.
한 평론가는 “SM에서 빌보드 차트에 영향을 끼치는 방법을 고민해 ‘꼼수’를 쓴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이런 식으로 성과를 올리면 K팝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K팝의 과제는 빌보드 싱글 차트(‘핫 100’)에서의 성적”이라며 “싱글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누구나 아는 K팝 히트곡이 나와야 K팝이 팝 시장에서 안착했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