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4경기만 남았다. 파이널라운드에 돌입한 K리그1에선 울산 현대(승점 72·1위)와 전북 현대(71·2위)의 우승 경쟁이 피를 말린다. 양 팀 우승의 키를 쥐고 있는 건 나란히 20개의 공격포인트로 최우수선수(MVP)급 활약을 펼친 김보경(울산)과 문선민(전북)이다. 해외 무대에서 데뷔해 다사다난한 역경을 거쳐온 두 선수는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있다.
부담감 벗은 ‘축구 도사’ 김보경
김보경(사진)은 한때 ‘포스트 박지성’의 선두 주자였다. 일본에서 데뷔해 남다른 센스를 선보인 그는 2009년 이집트 20세 이하 월드컵 8강을 시작으로 2010년 남아공월드컵 승선,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까지 탄탄대로를 걸었다.
올림픽 직후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 카디프 시티로 이적하며 유럽 진출에도 성공했다. 1년 만에 팀의 우승과 승격을 이끌고 자력으로 한국인 12번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데뷔골을 넣는 등 준수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카디프의 강등은 불운의 시작이었다. 김보경은 2015년 위건 애슬레틱으로 옮겼지만 또 다시 강등을 맛봐야 했다. 블랙번 로버스와 시도한 계약도 영국 노동청이 발급하는 워크 퍼밋(노동허가서) 조건이 까다로워지며 불발됐다. 최근 영국 미러에서 2010년대를 빛낸 유망주로 김보경을 조명했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주변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결국 마쓰모토 야마가에 입단하며 유럽 도전을 마감했다.
그 뒤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김보경 이적 시즌 마쓰모토가 강등당했다. 2016년 전북으로 이적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한 뒤 2017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이 성사됐는데 이 팀이 또 강등됐다. 어느덧 ‘강등전도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다.
김보경은 “잘 해야 한다는 주위 시선이 부담이 됐다. 해외에서 용병으로 뛸 땐 팀 성적이 안 좋은 것도 다 내 책임처럼 느껴졌다”고 복기했다.
울산 임대는 전환점이었다. 올 시즌 김보경은 리그 12골 8도움으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이제는 축구 도사와 같은 한 차원 높은 플레이를 선보인다. 자신을 억누르던 부담감을 벗어던진 게 비결이다.
김보경은 “실패를 돌아보면서 축구는 팀 스포츠이기에 나만 잘해선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선수들과 발을 맞추는 데 집중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조용히 사라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승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강해 체계적인 개인 훈련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김보경은 “막강한 전북과 우승 경쟁을 하고 있어 저에게 90점을 주고 싶다”고 자평한 뒤 “우승을 통해 나머지 10점을 채워 100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K리고 최고 윙어 등극한 문선민
문선민(사진)의 축구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시작은 서울 장훈고 시절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유럽으로 입단테스트를 받으러 다녔다. 졸업 직후엔 나이키 유망주 발굴 오디션인 ‘더 찬스’의 최종 8명에 선정됐다. 47만5000명과의 경쟁을 뚫어낸 문선민은 2012년 스웨덴 3부리그 외스테르순드 FK 입단에 성공한다.
문선민은 “대학보단 프로 경험을 유럽에서 해보고 싶었다”며 “그를 통해 유럽의 축구 스타일을 포함해 어디서 배울 수 없고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경험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스웨덴 땅은 춥고 척박했다. 동계스포츠로 유명한 중소도시엔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그 속에서 문선민은 자신을 증명했다. 첫해 팀의 우승과 2부리그 승격에 기여한 문선민은 이후 2년간 50경기 7골 8도움을 올렸다. 그리고 2015년, 문선민은 유르고덴스 IF로 임대 이적하며 1부리그에 입성했다. 그리고 두 시즌을 버텼다.
문선민은 “우울증에 향수병까지 찾아와 고생했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텼다. 축구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고 직업이었기 때문이다”며 “덕분에 초심을 잃지 않고 간절하게 축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K리그에서도 발전은 이어졌다. 2017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한 문선민은 지난 시즌 14골 6도움을 올려 최고의 윙어로 거듭났고, 국가대표에도 처음 발탁돼 러시아월드컵에서 왕성한 활동량을 과시했다. 전북으로 옮긴 올 시즌에도 10골-10도움 고지에 올랐다. 국내 선수 중엔 2011년 이동국 이후 8년 만이다.
문선민은 “도전을 원하고 경쟁을 즐기는 편이다. 전북으로 옮긴 것도 그래서다. 좋은 선수들이 많아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며 “(김)상식 코치님과 (이)동국이 형이 옆에 조금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선수가 있으면 활용하라고 조언 해주셔서 도움도 많아졌다”고 밝혔다.
문선민에겐 전북의 3년 연속 우승을 이끄는 게 가장 큰 목표다. 내년 상주 상무 입대를 신청해 올 시즌이 우승의 적기다. 문선민은 “스웨덴 3부리그 우승은 감흥이 없었다. 아시아 최고리그인 K리그에서 우승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