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이 오늘날처럼 티켓을 사고파는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된 것은 16~17세기 무렵이다. 한데 이때부터 공연시장은 선천적으로 불치의 증상을 보였다. 장사가 잘되는 데도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해 파산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16세기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들은 모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독일 최초의 오페라극장인 함부르크 오페라하우스 또한 몇십 년을 못 버티고 파산했다.
이 질병의 원인은 경제학자 보몰과 보웬의 1966년 공동저서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규명됐다. 기술 발전으로 기계가 인력을 대체한 다른 산업과 달리 공연예술은 인건비를 절약할 수 없으므로 결국 공연예술의 예산과 가격은 다른 상품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요약하자면, 다른 산업에서 노동력은 상품 생산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반면 공연예술은 ‘예술가의 노동’ 그 자체가 바로 사고파는 상품이라는 소리다.
보몰과 보웬은 이런 질병의 부작용을 지적하기 위해 18세기 런던의 극장과 20세기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의 공연 비용을 시즌별로 비교했다. 같은 기간 영국의 물가가 6.2배 상승한 것에 비해 공연제작 비용은 13.6배나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 이는 음악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뉴욕 필의 1843년과 1964년 제작 비용을 비교한 결과 120년 사이 물가는 4배 상승한 반면 콘서트 비용은 20배나 증가했다. 이래서는 아무리 잘나가는 공연이더라도 남는 것이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아무리 장사를 잘해도 적자인 공연예술계 현상을 보몰과 보웬은 ‘비용 질병(cost disease)’이라고 명명했다.
이 질병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공연예술에 투여되는 기부금이며 국가 지원금이 ‘비용 질병’을 완화하는 진통제라면, 공연장 운영자라든가 공연단체 대표들은 이 불치의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주치의라 할 수 있다. 공공 지원금은 공연예술이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단련시키는 데 활용돼야 한다. 많은 기부금과 지원금이 유입돼도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 경쟁력 있는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용 질병을 감당하는 가장 건전한 처방이다.
그동안 국내 공연예술 정책은 이러한 처방과 거리가 멀었다. 정부의 일반적인 복지정책과 맞물려 ‘생활예술’이라든가 ‘착한고용’은 공연예산 삭감으로 돌아와 공연예술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창작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공연예술의 현실을 모르는 비전문가 수장들의 낙하산 임명 또한 비용 질병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사진)가 지난 22일 공개한 중장기 발전전략 ‘아르코 비전 2030’은 이러한 위기를 감지한 듯 중장기 창작지원 사업을 대폭 강화했다. 그동안 치중했던 향유정책에서 벗어나 기금의 본래 용도인 창작지원에 충실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속성과 존재 이유마저 의심받는 한국 공연예술계가 이러한 전략으로 과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음악 칼럼니스트·숙명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