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아들이 걱정됐다. 혹여 잘못된 선택을 할까 싶어 아들의 집에서 곁을 지켰고 새벽이면 교회로 향했다.
그럴수록 아들은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기도하라”는 어머니에게 묘한 배신감까지 느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나간 어머니가 집에 오질 않았다. 걱정돼 찾아간 교회에서 아들은 울고 있는 어머니를 봤다. 통곡이 아니었다. 고통을 삼키듯 소리 없이 흐느꼈다. 어머니도 아들을 위해 저렇게 우는데 하나님은 어떠셨을까 싶었다. 아들은 기도하기 시작했다.
개그맨에서 ‘행복재테크’로 스타강사가 된 권영찬(51·소망교회) 집사의 이야기다. 지난 5일 서울기독대학교 인근 카페에서 만난 권 집사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기 전까지 자신이야말로 ‘고난의 3종 세트’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2005년 그 일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는 잘나갔다. 고정 프로그램은 10여개, PC방은 지점만 30여개나 됐다. “당시 연봉이 5억원 정도 됐어요. 친가, 외가 모두 3대째 믿음의 가정인데 가족의 기도가 저를 키웠다고 생각했죠.”
그해 6월 한 여성이 경찰에 그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권 집사가 운영하던 PC방의 한 지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데 열심히 사는 게 기특했어요. 한국문화를 배우고 싶다며 제가 참여하는 모임에 불러 달라고 했죠. 지금 아내인 당시 여자친구에게도 말했어요. 그 도움이 문제였어요.”
권 집사의 모임에 참석한 여성은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약물복용 의혹도 제기했다. “2002년 탈모가 와 성형외과 의사였던 형이 치료약을 줬어요. PC방 사업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한 달 치 약을 들고 다녔죠. 그걸 마약이라고 한 거예요.”
구치소에 구금됐다. 프로그램에서 퇴출됐고 PC방 사업은 망했다. 면회 온 어머니가 성경책을 넣어줬다. “자살까지 생각하던 제게 수감된 사람들이 ‘개그콘서트’ 티켓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싶었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이사야 41장 10절을 봤어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하셨어요.”
3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했다. 무죄를 확신했지만 1심에서 법원은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분노가 끓어올랐던 그때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를 봤다.
“‘우리 기도가 부족했나 보다’라는 어머니 말에 속으론 욕이 나올 정도였죠. 그런 어머니가 소리 죽여 우는 걸 보니 정말 미안했어요. 나를 영적으로 낳으신 하나님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게 됐고 새벽기도를 시작했죠.”
당시가 떠오르는 듯 권 집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후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치소 안에서 기도한 것들도 실현됐다.
“10분짜리 리포터, 엑스트라라도 좋으니 방송을 다시 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신인 개그맨들이 하는 라디오방송 게스트로 섭외돼도 최선을 다했죠. 그때 절박함을 떠올리면 감사한 일이었죠.”
이후 지상파 방송과 라디오, 지역방송에서 그를 불렀다. 힘들 때 함께한 여자친구와 결혼도 했다. 두 번째 고난은 결혼한 2007년 발생했다. 2008년 새해 영상을 찍기 위해 정읍의 드라마 세트장을 찾았다. 4m 높이였다. “스태프들은 튼튼하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불안하더라고요. 세트장 위로 올라가 ‘시청자 여러분’ 하는데 와르르 무너졌어요.”
바닥에 먼저 닿은 왼쪽 발뒤꿈치가 27조각으로 부서졌다. 척추뼈 두 개도 골절됐다. 5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놀랍게도 명예에 건강까지 잃었던 그때 성경을 제일 많이 읽었어요. 구치소에서 3번, 병원에서 5번 통독했어요.”
마지막 고난은 ‘돈’이었다. “어려운 일을 겪고 나니 믿을 건 돈뿐이었어요. 상장을 앞둔 회사에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고 투자했어요. 알고 보니 부실 기업이었고 주식시장에서 퇴출됐어요. 주식은 종이가 됐죠.”
힘든 상황에서 그는 새로운 길을 가기로 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 진학을 결심했어요. 그런데 강연에서 제 이야기를 듣고 회복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생각을 바꿔 연세대 상담코치대학원에 들어가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문화예술대 상담코칭심리학과 교수로 부임해 연예인들과 스포츠 선수들의 심리상담을 하고 코칭전문가 양성에 나섰다. 사업 부도로 은행 빚이 있지만 베푸는 삶도 살고 있다. 난임으로 어렵게 두 아들을 얻은 뒤 시각장애인에게 개안수술 비용을 지원한다.
“첫째인 도연이와 둘째 우연이는 각각 인공수정 두 번, 네 번 만에 얻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도연이가 백일을 맞을 때 시각장애인 두 분의 개안 수술을 진행했어요.”
지금까지 실로암안과에서 시각장애인 32명의 수술을 도왔다. 목표는 100명이다. 연예인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2015년부터 ‘연예인 자살 예방 상담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이제 유명세는 제게 중요하지 않아요. 다른 분들에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갈 겁니다. 천국은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