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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로봇으로 영상 20배 확대… 1㎜ 근종까지 99개 떼어내

가톨릭의대 은평성모병원 조현희(오른쪽) 교수가 로봇 자궁근종 수술을 위해 환자의 배꼽 주변에 절개할 작은 구멍을 표시하고 있다. 전문의는 별도 마련된 로봇 조정관(콘솔)에서 고해상도 영상을 보며 구멍으로 삽입된 길고 가느다란 로봇 팔을 움직여 자궁근종들을 떼어낸다. 은평성모병원 제공




몇 달간 배가 나오고 속이 더부룩한 증상을 느껴온 직장인 이모(32)씨는 소화제를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동네 의원에선 소화기 병이 아닌 산부인과 질환이 의심된다고 했다. 대학병원을 찾아 자기공명영상(MRI)촬영 결과 자궁 안에 크고 작은 종양들이 다닥다닥 돋아있는 게 확인됐다. 병원에선 종양이 너무 많아 제거가 까다로운 만큼 정교한 로봇수술을 권했다. 빠른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의료진은 배꼽 주변에 2㎝ 작은 구멍을 뚫고 그 안으로 로봇팔을 집어넣어 6시간에 걸쳐 종양을 다 제거했다. 떼낸 종양은 무려 99개.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운 1㎜ 종양까지 모두 깨끗이 없앴다. 일반 복강경 수술보다 20배 이상 확대된 영상장비가 장착된 덕분이었다.

이씨는 “수년 전부터 생리량이 많았지만 빈혈 치료만 받았고 결국 자궁 전체를 떼내야 한다고 해 무서워서 병원에 오지 못했다. 이렇게 근종이 많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자궁근종은 여성의 자궁 내 근육층에 흔히 생기는 양성 종양이다. 자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근육인 평활근에 혹이 생기는 게 대부분이다. 최근 임신·출산 연령이 높아지고 출산 횟수가 줄면서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에 더 일찍, 오래 노출돼 발생이 늘고 있다. 생리 과다나 생리통, 비정상적 질 출혈 등 증상이 가장 흔하며 배에서 혹이 만져지거나 방광을 눌러 빈뇨나 잔뇨 증상을 초래할 수 있다. 커서 장을 누르는 경우 소화불량이나 변비가 생기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톨릭의대 은평성모병원 자궁근종센터 조현희 교수는 11일 “최근엔 여성 호르몬의 기능을 하는 여러 화학물질이나 환경오염 물질의 증가로 인해 근종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학설이 있다”면서 “운동 부족이나 육류 섭취 증가 등 식생활 변화도 원인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자궁 평활근종 진료 환자는 지난해 39만2334명으로 2014년(29만1622명)보다 34.5% 증가했다. 30, 40대가 61.4%(지난해 기준)를 차지해 비교적 젊은 연령대에서 호발한다. 20대도 증가 추세다.

발생 부위에 따라 자궁 근육층 깊숙이 생기는 ‘근층 내 근종’(80%), 자궁을 덮고 있는 복막 바로 아래 생기는 ‘장막 하 근종’(15%), 자궁내막 아래층에 생기는 ‘점막 하 근종’(5%)으로 나뉜다. ‘점막 하 근종’은 자궁의 빈 공간으로 자라 나와서 출혈 등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고 예후가 가장 나쁘다. 근종의 크기는 현미경을 통해서만 보일 정도로 미세한 것부터 엄청나게 큰 것까지 다양하다. 조 교수는 “작으면 1㎜ 정도, 크면 복강을 가득 채울 정도로 자라기도 한다”면서 “29㎝의 거대 근종과 종양이 120개까지 들어차 있는 사례도 본 적 있다”고 말했다.

치료는 근종의 위치나 크기, 가임력 보존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호르몬을 이용한 약물요법, 열로 지지거나 녹여 제거하는 방법, 수술을 선택할 수 있다. 수술은 자궁근종만 떼 내거나 자궁 전체를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호르몬 약물요법은 근종 크기를 줄일 수는 있으나 완치가 어렵다. 근종이 크거나 많을 경우에는 자궁 전체를 제거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 하지만 임신·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가임력 보존을 원하거나 개복 수술에 부담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 보니 요즘엔 최대한 근종만 떼내는 수술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정교한 수술이 가능한 로봇이 각광받고 있다. 전문의가 로봇팔을 조종해 가면서 수술하는 방식으로 사람 손보다 섬세한 조작이 가능해 정상 자궁 조직의 손상을 줄일 수 있다.

조 교수는 “앞서 소개한 99개 근종 제거 환자의 경우 커다란 종양을 떼내고 나니 작은 근종들이 자궁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1~2㎜ 미세한 것들도 많았는데, 개복해서 손으로 떼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면서 “최소로 절개해서 하는 복강경 수술은 로봇처럼 영상 확대가 많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단순 복강경 수술을 했다면 제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환자 사례 연구를 통해 자궁 근종 절제에 있어 로봇 수술의 이점을 확인했다. 로봇 수술 환자들에서 생리통이 상당히 줄었고 종양 표지 물질 수치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생리통의 경우 통증 지수(VAS)가 9점에서 0점으로 떨어지며 큰 개선 효과를 보였다. 로봇 자궁근종 수술 환자 662명 대상 연구에선 로봇 수술이 10개 이상 종양 제거에 매우 유용하며 개복 수술에 비해 수혈 위험이 적고 수술 후 회복이 빠르다는 결과를 얻었다.

은평성모병원에는 최첨단 로봇 수술장비인 ‘다빈치 Xi’가 도입돼 있어 더 가늘고 긴 로봇팔로 섬세한 수술이 가능하다.

자궁근종은 발병 원인이 아직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아 마땅한 예방법이 없다. 정기 검진을 통해 수시로 점검하는 것이 최선이다.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1년에 한 번은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특히 자궁근종 가족력이 있다면 정기 검진은 필수다.

다음 달부터 자궁·난소 초음파 검사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검사 비용이 평균 4만원선에서 1만원대로 확 줄어든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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