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대표팀의 베이루트 원정은 험난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2차예선에서 1대 2로 패해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는 ‘레바논 참사’도 벌어졌다.
힘들었던 원정길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골이 있다. ‘레바논 참사’ 약 2년 후인 2013년 6월 5일 열린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레바논전에서 대표팀을 구한 버저비터 동점골이다. 후반 종료 직전 0-1 상황에서 환상적인 왼발 프리킥이 레바논 골망을 갈랐다. 우즈베키스탄에 골득실 차로 본선행을 확정했기에 그 골이 없었다면 대표팀은 브라질에 가지 못할 뻔했다. 추억의 골의 주인공 김치우(37)를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만났다.
김치우는 프로축구 FC 서울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K리그·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경기를 지배해 ‘치우천왕’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국가대표로 28경기 5골을 넣었고 그 중 3골은 왼발 프리킥으로 넣은 ‘왼발의 마술사’다. 서울과의 계약 만료 후 K리그2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해 선수 생활 황혼기를 보내는 중이다.
김치우에게도 레바논전 골은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는 “그날 킥 감각이 많이 좋아 프리킥 찬스에서 (손)흥민이에게 내가 차보겠다고 했고 운 좋게도 들어갔다”고 기억했다.
김치우도 베이루트 원정엔 혀를 내둘렀다. 그는 “레바논은 당시 내전 중이라 훈련할 때 총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다른 중동 원정처럼 열광적인 팬들도 많아 힘들었다. 먼저 실점하고 선수들이 조급해져 골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치우가 쏘아 올린 극적인 골은 그뿐 아니다. 2010 남아공월드컵 예선 당시 조 선두였던 북한과의 경기 막판 0-0 상황에서 극적 프리킥 결승골을 넣어 남아공행의 선봉장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김치우는 대표팀의 월드컵행을 이끌었지만 정작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남아공 땐 부상으로, 브라질 땐 최강희 감독이 홍명보 감독으로 교체되면서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김치우는 “선수 인생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축구선수로서 월드컵 나가고 못나가고 차이가 크다. 자기관리를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대표팀 선배인 차두리가 “네가 애들 월드컵 두 번 보내줬다”고 농담아닌 농담을 했을 때 씁쓸했다고 한다.
부산의 최고참으로 김문환, 이동준 등 어린 선수들을 이끈다. 올 시즌 22경기 4도움을 올리는 쏠쏠한 활약으로 팀의 플레이오프행에 일조했다. 그는 “지난 시즌 승격 문턱에서 좌절했기에 이번엔 꼭 성공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전날 김치우는 37번째 생일을 맞았다. 김치우의 언행에서 이제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팀 내 노장으로서 축구에 대한 속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마무리가 얼마 남지 않아 한 경기 한 경기가, 축구가 더 소중해요. 3살 아들이 축구 중계를 보고 ‘아빠’라고 말하기 시작해 책임감도 들어요. 끝까지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