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가 26년 만에 ‘베이루트 철벽’을 무너뜨릴까.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4차전 격전지인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는 1993년 이후 단 한 번도 한국에 승리를 허락하지 않은 중동의 철옹성이다. 한국은 통산 전적에서 레바논을 압도하지만 유독 베이루트만 가면 힘을 쓰지 못했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필승 카드’로 크로스를 선택했다.
한국 대표팀 선수단은 13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베이스캠프에서 마지막 훈련을 가진 뒤 베이루트로 이동했다. 한국과 레바논은 14일 밤 10시 베이루트 카밀샤문 스타디움에서 대결한다. 한국의 중간 전적은 2승 1무(승점 7) 10득점 무실점. 전적이 같은 북한(승점 7·골 +3)을 골득실 차에서 앞선 1위다. 레바논 원정에서 승리하면 선두를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다.
유럽파와 국내 K리그 핵심 선수들로 무장한 한국의 전력은 레바논을 압도한다. 통산 전적에서도 12전 9승 2무 1패로 한국의 압도적 우세다. 하지만 전적을 레바논 원정으로 좁히면 2승 2무 1패로 호각세다. 대결 장소를 베이루트로 한정할 경우 결코 안심하지 못하게 된다. 1승 2무 1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이루트에서 거둔 유일한 승리는 1993년 5월 11일 하석주의 결승골로 1대 0 진땀승을 거둔 1994 미국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전이었다. 그 이후로 세 차례 원정에서 모두 승리하지 못했다. 2011년 11월 15일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베이루트 원정에서는 1대 2로 져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이 경질된 일도 있었다. ‘레바논 쇼크’로 기억되는 경기다.
모든 대열을 웅크려 밀집 수비를 펼치고 한 번의 역습으로 득점을 노리는 ‘선수비 후역습’은 레바논의 기본 전술이다. 먼저 골을 넣고 시간을 지연하는 중동 특유의 ‘침대축구’도 펼친다. 한국 선수들의 주무대인 동아시아나 유럽과 다른 중동의 기후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레바논의 공격진은 역습에 능하다. 레바논 대표팀 내 최다 득점(21골)자인 주장 하산 마투크(안사르), 독일 태생으로 분데스리가 3부 리그에서 활약하는 힐랄 엘헬웨(SV메펜)는 빠른 드리블과 정교한 킥으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한다.
레바논은 최근 전력도 보강했다. 레바논의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첫 판인 지난 9월 5일 북한 평양 원정(0대 2 패)을 거부한 이유로 대표팀에서 퇴출됐던 센터백 조안 오우마리(빗셀 고베)와 미드필더 바셀 지라디(하이두크 스플리트)는 최근 사과하고 복귀했다. 레바논의 수비진은 이들의 합류로 더 견고해졌다.
벤투 감독은 밀집 수비를 무너뜨릴 확실한 공격 전술인 롱볼을 해법으로 선택했다. 대표팀 선수단에 예리한 크로스를 특별히 주문했다. 아부다비 베이스캠프에서 별도의 크로스 훈련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 196㎝ 장신 공격수 김신욱(상하이 선화)과 황의조(지롱댕 보르도)의 ‘투톱 카드’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 빠르게 선제골을 넣으면 경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다. 레바논은 중간 전적 2승 1패를 기록해 월드컵 2차 예선을 통과할 수 없는 3위로 밀려 있다. 무승부 이상의 성적을 노릴 레바논은 한국에 선제골을 빼앗기면 만회골을 넣기 위해 대열을 전방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밀집 수비가 허술해진다는 얘기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