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에서 문화는 찬밥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남북 관계 아닌가. ‘남북 정상의 판문점 악수’ 등 역사적 장면도 만들어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그 감격을 현실화시킬 진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정부에 ‘문화 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문화 대통령’을 표방했던 전임 박근혜정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아이돌 문화와 스포츠에 투자한 것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까지 번졌으니 문화가 꺼림칙할 수 있겠다.
이 정부가 실체 없는 ‘평화 경제’에 매달리는 사이, 현실 경제는 뒷걸음질 쳤다. 성장률은 급락하고 수출과 투자는 부진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처음으로 2% 이하로 떨어지는 게 확실시된다.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던 문 대통령도 “민간 활력을 높이는 데는 건설투자의 역할도 크다”며 토건 경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경제 하면 왜 건설공사만 생각할까. 4차산업 시대에 토건 경제는 낡은 패러다임이다. 현대 미술은 어떤가. 나라 경제가 말이 아닌데 미술 얘기를 꺼낸 건 미술이 가지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터무니없이 저평가받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현대미술은 ‘굴뚝 없는 공장’이다. 생존 작가 중 작품 값이 가장 비싼 작가, 영국의 데이비드 호크니를 보라. 그의 작품 ‘예술가의 초상’은 2018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1만 달러(약 1019억원)에 낙찰 받으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작품 한 점이 1000억원이 넘는다. 벽에 걸린 튼실한 중소기업인 셈이다.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동네 치킨집보다 경제 기여도가 큰 작가들이 적지 않다. 40대 초반 사진작가 A씨는 조수를 2.5명 쓴다. 인건비는 제외하고라도 사진 프레임, 프린트 비용, 촬영 로케이션 등 작품 제작을 위해 드는 돈이 월 2000만∼3000만원이다. 부대비용이 연간 3억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50대 인기 조각가 B씨는 조수만 20여명을 거느려 작업실이 회사에 가깝다.
현대미술 작품은 개념미술이 많다. 작가는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조수들이 제작하는 식이다. 일본의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라고 명명한 것은 그래서다. 미술은 인공지능과 결합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고용창출 면에선 고려청자보다 낫다. 한국은행에서 현대미술의 산업연관 효과를 분석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현대미술이 한국에선 홀대받는다. 작품 가격이 10억원이 넘는 생존 작가가 이제 겨우 3명 나왔을 뿐이다.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등 단색화 대표 작가들이다. 그나마 2012년 이후 국내외에서 단색화 전시와 아트페어, 학술대회가 잇달아 열리며 작품 가격이 뜀박질하면서 이렇게 됐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단색화전’이 기폭제가 됐다.
현대미술은 난해하다. 누가 미술사의 한 페이지에 중요한 작가로 ‘도킹’할지는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미술관과 화랑의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등 전문가들이 경험과 연구에 바탕한 안목과 감각으로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를 열어주고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해외 시장에 마케팅하는 역할을 한다. 미술계 생태계의 정점에 50년 역사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그런데 그 수장인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직급은 현대미술에 대한 홀대를 증명한다. 고위공무원단 나급(2급) 국장급이다. 차관급인 문화재청장,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비해서도 현격히 낮지만 박근혜정부 때 생겨난 신생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의 가급(1급)보다 낮다. 오죽했으면 전임 정부에서 한국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외국인을 임명할 때 논란이 일자 당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장 자리 하나 놓고 웬 난리냐”고 혀를 차기까지 했을까.
계급은 중요하다. 계급은 권력이기 전에 책임과 의무의 크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관·서울관·덕수궁관·청주관 등 4개관을 갖추고 있다. 지역에서도 분관 건립 요청이 이어진다. ‘현대미술 하는 중소기업인’을 키우기 위해선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이 막중하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0월 초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국립현대미술관장직을 차관급으로 올리는 방안을 행정안전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둘러 현실화돼야 한다.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